처음에 든 생각
전자나 광자 같은 기본 입자만이 진짜 실재이고, 나머지는 그것들의 묶음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나는 당연히 그렇겠거니 하고 받아들이고 있었다. 물리학을 제대로 배운 적이 없어도 이 직관은 어딘가에서 스며든다. 세계를 계속 쪼개다 보면 언젠가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것이 나오고, 그게 진짜배기 실재라는 것. 그 위에 쌓인 것들 — 온기, 소리, 얼음의 단단함 — 은 물론 실재하지만, 어딘가 2등 실재 같은 느낌이다.
그런데 저자 Felix Flicker는 그 직관이 과학적 발견이 아니라 철학적 가정이라고 한다. 그리고 지난 백 년간의 물리학이 조용히 그 가정을 흔들어왔다고. 읽으면서 생각보다 설득이 됐고, 모르던 개념들도 많이 나왔다. 그것들을 순서대로 정리해본다.
창발이 뭔지부터
논의의 출발점은 창발(emergence)이라는 개념이다. 저자는 물리학자 필립 앤더슨의 말을 빌린다. "전체는 부분의 합보다 많을 뿐 아니라, 부분과 근본적으로 다를 수도 있다." 처음엔 좀 추상적으로 들렸는데, 예시를 보니 바로 감이 왔다.
얼음을 생각해보자. 물 분자 하나는 차갑지 않다. 차갑다는 건 분자 하나의 속성이 아니다. 또 물 분자 하나는 단단하지 않다. 그런데 그 분자들이 모여 얼음이 되면, 차갑고 단단해진다. 어디서 온 걸까? 분자 하나에도 없고, 분자들의 단순한 합산에도 없다. 분자들 사이의 관계, 즉 그것들이 어떻게 배열되고 상호작용하는지에서 새롭게 생겨난다. 이게 창발이다.
중요한 건 이게 단순한 복잡성의 문제가 아니라는 거다. 더 많이 모여서 더 복잡해진 게 아니라, 질적으로 다른 무언가가 나타난다. 얼음의 차가움은 분자 수준의 기술로는 등장조차 하지 않는 속성이다.
분자 하나에 없던 속성이 집합에서 나타난다 — 이게 창발이다.
소리도 입자다 — 포논
창발을 이해하면 저자의 첫 번째 사례가 훨씬 선명해진다. 소리다.
말을 하면 공기가 파동처럼 압축됐다 팽창됐다를 반복한다. 그 파동은 에너지를 실어 나른다. 그런데 양자역학에서 에너지는 연속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 어떤 최솟값의 정수배로만 존재할 수 있다. 그러니까 소리의 파동도 이산적인 덩어리들로 이뤄진다. 이 덩어리 하나를 포논(phonon)이라 부른다.
포논은 표준 모형에 없다. 전자나 광자처럼 "기본 입자"가 아니다. "포논은 뭘로 만들어졌어요?"라고 물으면 답이 있다 — 공기 분자들의 집단적 진동 패턴. 분자들로부터 창발한 것이다.
직관을 잡는 비유
스프링으로 이어진 공들이 일렬로 늘어서 있다고 상상하자. 맨 앞 공을 튕기면 진동이 파도처럼 옆으로 전달된다. 이제 양자역학을 얹으면, 그 파동의 에너지는 최솟값의 정수배로만 존재할 수 있다. 그 최소 에너지 덩어리 하나가 포논이다.
중요한 건 이거다. 사슬을 해부해도 포논은 나오지 않는다. 공 하나를 꺼내도 포논은 없다. 포논은 사슬 전체가 어떻게 진동하는지에 관한 속성이다. 분자 하나에 차가움이 없듯, 공 하나에 포논은 없다.
포논은 어느 공에도 없다. 사슬 전체의 운동 패턴에서 나타난다.
그렇다면 포논은 "그냥 진동일 뿐" 아닌가? 이게 자연스러운 반응이고, 저자도 이 반응을 예상한다. 여기서 논증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핵심 논지 — 수학이 구별을 못 한다
저자의 첫 번째 논거는 이렇다. 원자들을 뭉개고 거시적인 기술로 올라오는 과정 — 이를 조대화(coarse-graining)라 부른다 — 을 거치면, 포논을 기술하는 방정식과 광자를 기술하는 방정식이 형식적으로 완전히 같아진다. 누군가 방정식만 보여주면서 "이게 기본 입자야, 창발 입자야?"라고 물어도 수학만으로는 답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게 왜 중요한가. 우리는 보통 "전자는 진짜고 포논은 편의상 개념"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물리 법칙 자체가 그 구분을 하지 않는다면, 그 구분은 세계에 있는 게 아니라 우리 머릿속에 있는 거 아닐까? 저자는 말한다. 하나는 진짜고 하나는 아니라고 주장하려면, 그쪽에서 증명해야 한다. 기본 값은 동등함이다.
물론 이것만으로는 "그래도 수학이 같을 뿐이지, 실제로 같은 건 아니지 않냐"는 반론이 가능하다. 그래서 저자는 실험을 들고 나온다.
원자를 뭉개고 올라오면 방정식이 같아진다. 수학은 둘을 구별하지 않는다.
플라즈몬 — 측정으로 증명하다
전자를 얇은 알루미늄 박막에 통과시키는 실험이 있다. 통과 전후로 전자의 에너지를 측정하면, 전자가 에너지를 잃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런데 그 손실이 이상하다. 항상 어떤 최솟값의 딱 정수배다. 1배, 2배, 3배는 나오는데, 1.5배나 2.7배는 없다.
왜일까? 금속 속에서 전자 구름 전체가 집단적으로 출렁이며 플라즈몬(plasmon)이라는 창발 입자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플라즈몬 하나를 만드는 데 정확히 에너지 한 단위가 든다. 전자가 에너지를 잃을 때는 플라즈몬을 하나씩 만드는 것이고, 반 개짜리 플라즈몬은 존재하지 않으니 손실도 정수배가 된다.
이게 중요한 이유가 있다. 양자역학에서 에너지가 딱딱 끊기는 이산적 단계로 나타나는 것 — 이를 양자화라 부른다 — 은 진짜 입자의 특징이다. 빛이 광자로 이뤄졌다는 말의 의미가 정확히 이것이다. 플라즈몬도 똑같이 양자화된 모습을 보인다. 이건 해석의 문제가 아니라 데이터의 문제다.
에너지 손실이 1.5배나 2.3배가 아니라 딱 정수배로만 나온다. 반 개짜리 플라즈몬은 없다.
가장 놀라운 것들 — 양자 스핀 아이스
포논이나 플라즈몬은 그래도 뭔가로부터 나온다는 느낌이 있다. 공기 분자가 있으니 포논이 나오고, 금속 전자가 있으니 플라즈몬이 나온다. 그런데 저자가 소개하는 다음 사례는 이 느낌마저 깨버린다.
양자 스핀 아이스(quantum spin ice)라는 자성 결정이 있다. 이 결정에는 전자가 없다. 자기 이온들만 격자를 이루고 있다. 그런데 이 계에서 세 종류의 창발 입자가 나타난다.
첫째는 창발 전자다. 전자가 없는 시스템에서 전자처럼 행동하는 입자가 생긴다. 둘째는 자기 홀극(magnetic monopole)이다. 우리는 학교에서 자석을 아무리 잘라도 N극과 S극이 항상 같이 나온다고 배운다. 그런데 이 결정 안에서는 N극만 가진 입자가 안정적으로 존재한다. 셋째는 창발 광자다. 이 결정 안에서 신호가 전달되는 최대 속도를 정하고, 다른 두 입자 사이의 상호작용을 매개한다. 우주 전체에서 광자가 하는 역할을 결정 안에서 담당하는 셈이다.
이것들은 기본 입자를 흉내낸 게 아니다. 전자가 없는 곳에서 전자가 나오고, 불가능하다고 배운 자기 홀극이 나온다. 앤더슨의 말이 다시 맞아 떨어진다. 전체는 부분과 다르다.
전자가 없는 시스템에서 전자가 나온다. 창발의 힘이다.
전자의 스핀 — 홀론과 스피논으로 가기 전에
다음 개념으로 가려면 전자의 스핀을 먼저 알아야 한다. 전자는 두 가지 기본 속성을 가진다. 하나는 전하 — 음전하를 띠어서 다른 전하와 밀고 당기는 성질. 나머지 하나가 스핀이다.
스핀은 이름이 좀 오해를 부른다. 전자가 실제로 뭔가를 빙글빙글 도는 게 아니다. 전자가 작은 자석처럼 방향성을 갖는다는 거다 — 위(↑) 아니면 아래(↓), 두 상태만 가능하다. 왜 그런지는 양자역학 깊숙이 들어가야 하는 이야기라 여기선 일단 "전자가 갖고 태어나는 방향성 있는 성질"로 이해하고 넘어간다.
핵심은 이거다. 전하와 스핀은 보통 항상 같이 붙어 다닌다. 동전의 앞면과 뒷면처럼, 둘은 하나의 전자에 묶여 있다. 적어도 보통은.
전하와 스핀은 보통 한 묶음이다. 적어도 보통은.
홀론과 스피논 — 전자가 쪼개진다
특정 결정 안에서는 이 묶음이 깨진다. 전하와 스핀이 갈라져서 각각 독립적인 입자처럼 따로 돌아다닌다. 전하만 가진 것을 홀론(holon), 스핀만 가진 것을 스피논(spinon)이라 부른다.
저자는 이걸 체셔 고양이에 비유했다. 루이스 캐럴의 소설에서 체셔 고양이는 몸이 먼저 사라지고 미소만 공중에 남는다. 홀론과 스피논이 딱 그렇다. 전자가 사라지고, 그 속성들이 각자 따로 남아 움직이는 것이다.
이건 기본 입자 물리학으로는 기술 자체가 안 되는 현상이다. 전자는 언제나 전하와 스핀을 같이 가진다. 이게 가능하다는 것 자체가 창발의 힘이다.
전자의 전하와 스핀이 갈라져 각각 따로 움직인다. 체셔 고양이의 미소처럼.
그래서 뭐가 근본적인가
이 모든 사례들이 향하는 결론은 하나다. "근본적"이라는 말은 "가장 작음"을 뜻하는 게 아니라, "어떤 기술 수준에서 다른 현상들을 설명하는 토대가 됨"을 뜻해야 한다. 원자는 화학에서 근본적이고, 포논은 음향학에서 근본적이고, 전자는 입자물리학에서 근본적이다. 이 관계들은 서로를 무효화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이런 가능성이 열린다. 지금 우리가 기본 입자라고 부르는 것들 — 전자, 광자, 쿼크 — 도 사실 더 깊은 무언가의 창발 입자일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 가능성을 열어두면서 글을 마친다. 확답은 없다. 하지만 그게 질문이 틀렸다는 뜻은 아니다.
읽으면서 생긴 의문들
"근본적"이 항상 기술 수준에 상대적이라면, 절대적으로 근본적인 건 없다는 말 아닌가. 그게 불편하게 느껴지는 건 나만인가. 아니면 이게 실제로 감당해야 할 결론인가.
수학이 같다는 게 존재가 같다는 증거가 될 수 있는지 잘 모르겠다. 같은 방정식으로 기술된다는 건 우리의 언어가 같다는 것이지, 세계 자체가 같다는 건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지도가 같다고 영토가 같은 건 아니지 않나.
원자를 "뭉개고 올라온다"는 과정이 기술의 선택이라면, 그 이후에 방정식이 같아지는 건 세계가 같다는 게 아니라 우리가 같은 방식으로 보기로 선택했다는 것 아닐까. 이 부분에서 저자가 너무 빨리 결론으로 달리는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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