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바세계의 요 며칠 변동성이 큰 주식시장은 뒤로 하고 식물과 멘탈관리 할 시간이다. 변동성이 높은 장에서는 가만히 있어도 중간은 간다는 것을 경험으로 안다. 반도체 섹터가 죽는 것도 아니고.
양재동에서 데려온 지 어림잡아 3주 된 잉글리시 라벤더는 지난 주부터 새순이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화분을 들추어 보니 잔뿌리 하나가 물구멍 사이로 삐져나왔다. 심겨진 화분의 한계를 탐색하나 보다. 포트에 심은 지 3주 남짓 됐는데 벌써 저런다고? 아무래도 흙 배합이 뿌리가 뻗어나가기 좋게 된 모양이다. 마사 6에 상토 4면 자갈밭이나 마찬가지지만. 진정한 시험대인 다가오는 장마가 걱정이긴 하다.

클리핑 로즈마리를 살까 말까 고민하다 안 샀는데, 노지에서 바람과 비를 맞히지 않을 거라면 로즈마리가 라벤더보다 훨씬 난이도가 높다고 생각한다. 로즈마리 잎은 라벤더보다 더 뾰족하고 뻣뻣해서 물이 부족한 건지, 해충에게 공격받는 건지, 과습으로 죽겠다는 건지 티가 잘 안 난다. 커먼 로즈마리는 화원에서 구하기 정말 쉬운 데 비해 실내재배용이 아니다. 90% 확률로 과습과 곰팡이로 죽이라는 거지.
인터넷에서 마사토와 데로마 토분을 주문했다. 19호 아래로는 생각보다 싸서 다행이다. 나머지 녀석들도 분갈이를 마쳤는데, 딱 봐도 이 화분은 숨을 쉰다는 티를 팍팍 낸다.
다이소에서도 토분을 봤다. 터키산과 중국산. 터키산이 그럴싸해 보이는데 — 유약은 안 발랐다 — 물 흡수가 안 된다는 여론이 있나 보다. 결정적으로 물구멍을 그렇게 작게 뚫어놓으면 배수를 하자는 건지 말자는 건지. 옛날 다이소 원예용품에 한번 호되게 당해봐서(분갈이흙에서 웬 버섯이? 나는 균사를 산 적이 없는데!) 도저히 신뢰가 안 간다. 그래서 검증된 이탈리아제 토분을 택했다.

커먼 타임은 도기 화분에서 15호 화분으로 이동. 마사·상토 비율을 5:5로 했음에도 불구하고 도기 화분에서는 통기성이 꽝이었다. 3일 전에 물을 줬는데도 화분 밑 흙이 떡져 있다. 하루 이틀 고인 물이 아니다. 하마터면 과습으로 죽일 뻔했다. 토분 효과는 즉각적이라 속흙이 눈에 띄게 말라가고 있다.
어렸을 때는 몰랐지만 머리가 크고 나니 식물을 화분에 키울 때 흙 배합과 화분 선택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았다. 영양 문제는 둘째고. 내가 식물을 죽이는 패턴은 대개 세 가지다. 빛을 적게 쪼여 죽이기, 물 안 줘서 죽이기, 과습으로 죽이기. 아마 세 번째가 내가 저질렀던 실수 중 빈도가 가장 높을 거다.
그리고 꽃집에서 사면 흙이 넘치지 말라고 표면에 중립 마사토를 멀칭해 놓는데, 보기에는 좋지만 이것도 식물을 잘 가려서 해야 한다. 표면에서 수분이 증발해야 흙이 숨쉬는데 마사토층이 공기와의 접촉을 차단하면 수분이 갇히게 된다. 게다가 실내는 공기 흐름이 정체되어 있지 않은가. 지중해 허브나 관목류에게는 쥐약.
예전에는 꽃집에 분갈이를 맡겼는데, 지금 보면 어리석은 행위였다. 식물 특성에 맞게 마사, 잡석, 펄라이트, 바크 등을 적절히 배합해야 하는데 거기선 그냥 분갈이용 배합토를 때려박는다. 아이고. 이러니 식물들이 죽어나가지. 그래서 나는 통풍이 안 되는 아파트 베란다나 거실 창가라면 식물 종류와 무관하게 마사토 비율을 오버해서라도 높일 필요가 있다고 본다.
도기, 자기, 플라스틱은 통기성 면에서 전부 꽝이다. 분갈이한다고 뒤집으면 흙이 제대로 떡져 있다. 토분을 쓰면 디자인의 다양성은 희생해야 하지만, simple is the best. 부직포 화분도 통기성 면에서는 훌륭한 선택이지만 나는 반대다. 거친 입자와 마찰될 때마다 미세플라스틱이 흙에 섞일 수 있으니, 진정 지구를 생각한다면 그 장난질은 치고 싶지 않다. 코코넛 섬유 화분이 가장 친환경적인 축에 들지만, 토분보다 훨씬 잘 마르기 때문에 물 주는 주기가 짧아져 귀찮아진다. 결정적으로 중대형 사이즈는 나중에 흙 무게로 무너지기 때문에 거의 안 만든다.
타임이 쓰던 화분은 상대적으로 과습에 강한 제라늄에 넘겼다. 마사를 듬뿍 때려넣었다.

오렌지자스민(이녀석은 운향과로, 귤이나 레몬과 더 가깝지 자스민과는 남남이다)은 좀 더 넉넉한 17호 토분에 식재했다. 마사·상토 비율은 4:6. 내년에는 19호나 21호짜리 토분이 필요할 듯한 느낌이다. 다만 너무 큰 화분에 심으면 뿌리가 채우지 못한 흙 부분에 수분이 오래 잔류해 과습으로 골로 보낼 위험이 있다. 장마가 곧이다.
소문은 들었지만 꽃향기가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두 송이만으로 베란다에서 강한 자스민 꽃향이 바로 난다. 큰 화분에 큰 놈으로 사면 개화기에 얼마나 향기가 진하게 날까. (차로 마시는 진짜 자스민인 학자스민은 덩굴이니 관리가 매우 귀찮아서 안 샀다. 사실 자스민 이름이 붙은 관목이 여러 개 있지만 전부 다 과가 다르다. 그나마 오렌지자스민은 키우기 쉬운 축에 든다고 평가받는다.)
페퍼민트는 다른 화분으로 옮기면서 뭉쳐 있던 삽목묘 4개를 나눴다. 서로 햇빛을 가리니까. 이 큰 화분을 민트가 혼자 다 잡아먹을 수는 없지 않은가.


대형 화분은 스위트바질로 채웠다. 아파트 장날 꽃 상인이 온 김에 샀다. 먹을 수 있는 걸 심으라는 지시를 받았지만 지금 시기가 어중간해 상추 모종 사자고 멀리 가기도 그렇다. 파종을 하자니 웃자라기 딱 좋은 계절 아니던가.
바질 모종은 3개를 샀고, 1포트당 3주씩 심겨 있었다. 이러면 한 놈이 나머지를 말려 죽이거나 셋 다 비실하게 큰다. 과감히 1주씩 분리했다. 뿌리가 상했을 수도 있지만 바질은 그 정도는 견디리라 믿는다. 자네도 꿀풀과잖나?
베란다 특성상 햇빛을 조금이라도 더 받고 물빠짐에 유리하도록 두둑을 만들어 주었다. 빛이 들어오는 각도를 보면 창가 바로 앞에도 항상 그늘지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노지라면 두둑은 굳이 필요하지 않다.
이젠 끝이다. 추가 영입은 없다. 바질이 때가 되어 초록별로 가면 그 자리에 케일이나 상추를 심어 겨울에서 봄까지 뜯어먹으려 한다. 십자화과 식물은 추위를 버틸수록 잎이 두꺼워지고 달달해진다. 체액 농도가 진해져야 이파리가 안 어는 것, 부동액의 원리와 같다. 해충 걱정도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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