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주인장에게 지령이 내려왔다.
"이번 어버이날은 카네이션을 받고 싶구나. 절화 말고, 화분으로"
그래서 어버이날을 이틀 앞두고 냉큼 사 왔다. 사진에서 보다시피 중품 화분 두 개를 합쳐놓아서 풍성했다. 저래뵈어도 돈이 꽤나 깨졌다. 카네이션이 이렇게 비싼 거였나?
그래도 다이소나 시내 꽃집에서 파는 것을 보면 꽃 크기도 훨씬 크고 보기 좋았던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목표는 이 녀석을 어떻게 하면 안 죽일 수 있느냐다.


한 달 후의 카네이션은 많이 휑해졌다.
일단 녀석은 태생이 태생이라 지중해 연안 원산으로, 배수가 잘 되고 통풍이 좋은 환경을 선호한다. 특히 과습에 극도로 약해서, 이파리가 저렇게 빽빽하게 들어차면 십중팔구 곰팡이와 병해충을 부른다. 흙도 잘 안 마르는 것은 덤.
거기에 통기성이라고는 빵점짜리인 검은색 플라스틱 화분에 식재했으니 말 다 했다. 살 당시에는 집에 굴러다니는 화분이 저것밖에 없었지만, 꽃을 다 보고 나서 분갈이하겠다 벼르고 있었다.
일단 사고 난 다음 할 일은 딱 봐도 너무 많아 보이는 꽃봉오리들을 솎아 내는 것이다. 양분을 하나의 꽃봉오리에 집중시킨다는 전제 하에, 가장 크고 상태 좋은 녀석들만 남기고 과감히 잘라냈다. 사진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 쭈글쭈글한 녀석은 쭉정이들로, 양분 배분에서 밀린 것이다.
봉오리만 쳐낸 게 아니라 하엽과 덤불 속의 빛을 못 받는 가지도 다 쳐냈다. 가뜩이나 공기가 안 통하는 베란다인데, 저러면 바로 병이 오게 될 것이었다.
생육환경의 악화는 얼마 안 가 바로 나타났다. 농장에 비하면 확실히 극한 환경이다. 꽃봉오리가 끝부터 말라가기 시작했고, 배수가 원활하지 않은지 은빛이 도는 초록색 잎이 하나둘씩 누리끼리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결국 대수술을 하기로 결정했다.
먼저 서로 맞닿거나 상태가 안 좋은 가지들을 대거 쳐내 통풍을 확보했다. 그리고 화분을 뒤집었더니 예상대로 밑에 상토가 떡져 있었다. 화분 장수에게 분갈이를 맡기면 대개 이런 식이다. 카네이션처럼 과습에 쥐약인 녀석에게는 마사토나 펄라이트가 넉넉히 섞인 흙을 넣어야 하는데, 실내라면 그 비율을 더 높여야 한다고 본다.
그러고보니 다가오는 한여름이 문제다.
바람이 통하는 베란다 창가는 이미 임자가 있기 때문에, 어떻게든 흙이 숨쉬게 해야 할 대책이 필요했다.
토분도 좋은 선택이지만, 바람 한 점 안 드는 베란다 안쪽에서는 통기성을 극대화할 다른 방법이 필요했다. 대안으로 부상한 것이 부직포 화분. 하지만 시중에서 파는 부직포 화분의 재질은 대부분 폴리프로필렌, 즉 플라스틱이다. 나는 이 취미를 하면서 흙을 플라스틱에 오염시키고 싶지 않다.
그러다 안 쓰던 면 재질 토트백이 눈에 들어왔다. 저거라면 과습 걱정은 덜겠다. 스테이플러를 사용해 사이즈를 조절했다.
그리고 카네이션을 꺼내 봤더니 맙소사. 뿌리가 포트묘 형태 그대로 뭉쳐 있는 것이 아닌가. 이러니 상태가 안 좋았지.
갈변하거나 상태가 좋지 않은 뿌리를 솎아 낸 다음 (대충 화분의 4분의 1 높이 정도) 뭉친 뿌리를 살살 풀어주고 식재했다.
그리고 열흘이 지났을까, 긍정적인 피드백이 왔다.
마디에서 새순이 올라오고, 몇몇 가지에서는 꽃대도 다시 올라오고 있다. 잎도 약간 노르스름한 기가 점점 사라지고 원래의 색깔로 회복 중이다. 하엽도 더 이상 생기지 않는다. 며칠 전에는 밑동 부근에서 새로 생장점이 만들어졌다. 작지만 새순이 올라오고 있다 (마지막 사진).
베란다에 들어온 이상 노지나 온실에서처럼 예쁘게 키워내기는 글렀다. 죽이지 않고 살리는 데 의의를 둘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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