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우리에게는 널리 통용되는 한나 아렌트라는 모습이 있다. 이는 기존의 논쟁 구도에 매끄럽게 맞아떨어지고, 우리가 던져온 질문에 답을 내놓으며, 우리의 직관을 확인시켜 주는 그런 아렌트다. 자유주의자들은 시민적 참여를 옹호하기 위해, 공동체주의자들은 ‘무연고적 자아(unencumbered self)’를 공격하기 위해, 진보주의자들은 도구적 이성을 비판하기 위해, 그리고 냉전주의자들은 나치와 스탈린주의를 싸잡아 비난하기 위해 저마다의 아렌트를 동원한다. 하지만 이렇게 알려진 아렌트의 모습은 거의 모든 핵심적인 지점에서 사실과 다르다.
이러한 오해들은 단순한 왜곡이나 지엽적인 해석상의 다툼이 아니다. 그것은 구조적인 오류다. 독자들은 아렌트가 기존의 이론적 틀을 해체하고 질문을 원점에서 다시 세우도록 내버려 두는 대신, 자신들의 틀을 아렌트에게 끈질기게 투영해 왔다. 그 결과 아렌트는 끊임없이 인용되지만, 제대로 이해되는 경우는 드물다. 설상가상으로 이러한 오해들이 하나의 정설로 굳어버린 탓에, 이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단순히 게으른 독해와 싸우는 것을 넘어, 자신들의 투영을 아렌트의 실제 견해로 착각해 온 방대한 2차 문헌의 무게에 맞서야만 한다.
이 에세이는 아렌트가 오용되는 네 가지 패턴을 검토하고, 원전(primary texts)에 근거하여 이를 바로잡은 뒤, 마지막으로 무엇이 그의 사상을 그토록 수용하기 어렵게 만드는지에 대해 제언하고자 한다.
I. "악의 평범성"은 인간 본성에 대한 진단이 아니다
1963년, 한나 아렌트가 아이히만 재판 보고서에서 ‘악의 평범성(the banality of evil)’이라는 용어를 제시했을 때, 철학자의 의도는 악이란 일상적인 것이라거나, 조건만 맞으면 누구나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뜻이 아니었다. 또한 홀로코스트가 관료 기제에 의해 증폭된 보편적 인간 심리의 산물이라는 주장도 아니었다. 그가 말하고자 한 바는 훨씬 더 구체적이고 생경하며, 철학적으로도 대단히 까다로운 지점에 맞닿아 있었다.
대중적 수용 과정에서 이 문구는 “특정한 상황에 놓이면 누구든 참혹한 범죄에 가담할 수 있다”는 식의 사회학적 테제로 박제되었다. 이런 독법은 아렌트를 도덕적 억제력을 압도하는 상황적 압박을 경고한 심리학자, 즉 스탠리 밀그램의 선구자 정도로 격하시켰다. 반대편의 비판자들은 아이히만에게 면죄부를 주려 한다거나 희생자들을 향한 감정적 연대가 부족하다고 비난했다. 양 진영 모두 아렌트의 논의를 인간 본성이나 상황 심리에 대한 주장으로 오해한 것이다. 이 오독은 너무나 견고하게 자리 잡아 이제는 하나의 정설처럼 군림하고 있다.
그러나 재판 현장에서 아렌트가 목격한 것은 사회학적으로 뻔한 현상이 아니라 철학적으로 당혹스러운 실체였다. 아이히만은 괴물이 아니었다. 그는 가학적이지도, 직업 관료 이상의 광신적 이데올로기에 매몰되어 있지도 않았으며, 심지어 깊은 의미에서의 반유대주의자조차 아니었다. 아렌트가 발견한 것은 그의 표현대로 "기묘할 정도로 지극히 진정한, 사유함의 무능(a curious, quite authentic inability to think)"이었다.¹ 이는 그가 엄격히 구분했던 ‘어리석음(stupidity)’도, 사악함도 아니었다. 그것은 인간이 지닌 특정한 정신적 기능이 구체적으로 결여된 상태였다.
이는 심리학적 관찰이 아닌 인식론적 관찰이다. 아렌트의 주장은 사유와 도덕적 주체성 사이의 관계를 파고든다. 1971년 강연인 "사유와 도덕적 고려(Thinking and Moral Considerations)"에서 악의 평범성을 어떤 "이론이나 교리(theory or doctrine)"가 아닌, "지극히 사실적인 현상(quite factual)"으로서 언급했다고 못을 박았다. 그리고 이 현상은 본인으로 하여금 '권리 문제(quaestio juris)', 즉 어떤 철학적 권리로 그 개념을 소유하고 사용할 수 있는가라는 의문을 제기하게 만들었다고 말했다.² 아렌트는 이 강연에서 세 가지 명제를 통해 그 논거를 펼친다.³
첫째, 옳고 그름을 가리는 능력이 사유하는 능력과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다면, 사유는 소수만이 누리는 특권일 수 없다. 그것은 모든 인간에게 부여된 보편적 기능이어야 한다. 따라서 아이히만에게서 나타난 판단력의 마비는 예외적인 광기가 아니라 보편적 능력의 부재였음을 의미한다.
둘째, 사유가 도덕적 규범이나 계율, 준칙을 만들어낼 것이라고 기대해서는 안 된다. 사유는 칸트가 말했듯 스스로 도출한 결과물조차 고정된 원리로 받아들이는 것에 대한 "본능적인 거부감(natural aversion)"를 지닌다. 직관적으로 풀어 말하자면, 사유는 "전날 밤에 완성한 것을 매일 아침 해체하는(undoes every morning what it had finished the night before)"작업이다.⁴ 이는 사유 없이 규범에만 의존하는 사람들이 그 규범이 뒤바뀔 때 가장 취약해짐을 시사한다. 아렌트는 전체주의의 속성을 다음과 같이 꼬집는다. "기존의 규범을 더 굳게 붙들고 있었던 사람일수록, 새로운 규범에 자신을 동화시키려는 열망도 더 크기 마련이다(The faster men held to the old code, the more eager will they be to assimilate themselves to the new one)".⁵ 규범의 뒤집힘(reversal)이 이토록 용이하다는 사실은, 그 이전에 이미 사유의 기능이 마비되었음을 보여주는 증상이다.
셋째, 사유는 정의, 아름다움, 용기와 같은 보이지 않는 것들을 다루기에, 눈앞에 나타나 보이는 세계(현상계)에서는 구조적으로 "부적합한(out of order)" 상태에 있다. 이것이 사유가 항상 주변부에 머무는 이유이자, 그 정치적 유의미함이 오직 비상사태에서만 빛을 발하는 이유이다.
그러나 아이히만에게 결정적으로 부족했던 것은 사유하려는 성향뿐만 아니라, 아렌트가 칸트의 『판단력 비판 (Critique of judgement)』에서 도출한 확장된 사유 방식(enlarged mentality, erweiterte Denkungsart)조차 부재했다. 아렌트는 『칸트 정치철학 강의』에서 다음과 같이 쓴다. "확장된 사유 방식으로 생각한다는 것은 자신의 상상력이 '방문'하도록 훈련하는 것을 의미한다(To think with an enlarged mentality means that one trains one's imagination to go visiting)". 즉, 타인의 의견을 단순히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위치와 조건, 관점을 세계를 바라보는 관측점으로 삼아 사유 속에서 타인의 입장에 서보는 것을 뜻한다.⁶
아렌트는 이것이 공감(empathy)이 아니라고 선을 긋는다. "비판적 사고의 핵심은 타인들의 마음속을 들여다보는 거창한 공감에 있는 것이 아니다(The trick of critical thinking does not consist in an enormously enlarged empathy through which one can know what actually goes on in the mind of all others)".⁷ 확장된 사유는 타인이 감정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타인이 서 있는 곳에서 생각하는 능력이다.
이러한 구분은 아렌트를 향한 흔한 오독의 문제와 직결된다. 아이히만의 희생자들에게 냉담하다고 비난했던 비평가들은 공감을 요구했다. 즉 가해자를 심판하기보다는 피해자의 고통을 함께 느끼기를 원했던 것이다.
하지만『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전체에 함축되어 있고, 게르숌 숄렘(Gershom Scholem)과의 서신에서도 일관된 아렌트의 답변은, 감정을 판단으로 대체하는 바로 그 행위야말로 그가 진단하고자 했던 실패라는 점이다. "우리가 이 과거를 직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우리가 판단하기 시작하고 그에 대해 솔직해지는 것이라고 믿는다(I do believe that we shall only come to terms with this past if we begin to judge and to be frank about it)".⁸ 판단에 대한 고집은 아렌트의 도덕적 책무였다. 아이히만은 결코 '방문'하지 않았다. 그는 단 한 번도 희생자들의 입장에 서보지 않았으며, 자신의 행위를 불가능하게 만들었을 종류의 사유를 할 능력이 없었다. 아이히만을 비판하는 사람들, 그리고 아렌트의 분석을 비판하는 사람들 역시 똑같은 실패를 저질렀다. 그들은 성역 없는 판단(judgement)을 거부하고, 고된 과업(판단)을 미완으로 남겨두는 정서적 반응에 안주했다.
사유가 가져다주는 해방 효과의 부산물은 판단이다. 즉, "학습된 일반 규칙 아래 개별 사례를 귀속시키지 않고도, 그 자체로 판단하는 능력(the faculty to judge particulars without subsuming them under those general rules which can be taught and learned until they grow into habits)"이다.⁹ 판단은 "인간의 정신적 능력 중 가장 정치적인 것(the most political of man's mental abilities)"으로, 어떠한 기성 규칙 없이 오직 개별적인 사안에 직면하여 "이것은 잘못되었다"라고 말할 수 있는 능력이자 용기이다.¹⁰ 이것이 바로 아이히만에게 결여된 것이었으며, "악의 평범성"이 평범한 인간 심리에 대한 사회학적 테제가 아니라 인지 능력의 실패에 관한 인식론적 테제인 이유이다.
II. 아렌트의 공적/사적 구분은 자유주의적 구분이 아니다
자유주의 정치 이론에 익숙한 독자들은 아렌트의 공적/사적 구분을 마치 ‘소극적 자유(negative liberty)’의 한 변주인 것으로 오해하는 경향이 있다. 즉, 공적 영역은 국가 권력이 작동하는 곳이고, 사적 영역은 개인이 그 권력으로부터 보호받는 안전지대라는 식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아렌트의 정치철학은 그저 개인의 권리라는 울타리 안에서 시민 참여를 독려하는 이론 정도로 국한된다. 하지만 이러한 해석은 틀렸으며, 그 오류의 뿌리는 원전의 현상학적 토대를 간과한 데서 기인한다.
아렌트의 공/사 구분은 그 기원이 그리스적이며 성격상 철저히 현상학적이다. 논점은 권리에 기반한 사생활 보호나 소극적 자유와는 사실상 접점이 없다.
아렌트가 『인간의 조건』 2장에서 재구성한 고대 그리스인들의 경험을 보자. ‘오이코스(oikos, household, 가정)’는 생물학적 재생산, 노동, 물질적 필요의 충족이 이루어지는 ‘필연성(necessity)’의 굴레에 묶인 영역이었다. 반면 ‘폴리스(polis)’는 ‘자유(freedom)’의 영역이었다. 그곳은 시민들이 서로 앞에 고유한 개인으로서 나타나며, 자신이 ‘무엇(what)’인지가 아니라 ‘누구(who)’인지를 드러내는(disclosing who they were rather than merely what they were) 공간이었다.¹¹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구분은 ‘보호받는 구역’과 ‘규제받는 구역’ 사이의 구분이 아니다. 그것은 필연성과 자유 사이의 경계이며, 생물학적 생존과 인간적 탁월함(distinctness) 사이의 근본적인 차이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급진적이다. 아렌트적 의미에서의 사적 영역은 안식처가 아니라 ‘박탈(privation)’의 장소다. 이 단어를 특별히 선택한 데에는 어원적 의미와 연관이 있다.¹² 사적 영역에 갇힌다는 것은 필연성의 어둠 속에 유폐되는 것이며, 타인에게 보이지 않는 상태, 즉 세계적 실재성(worldly reality)이 없는 삶에 처해짐을 의미한다. 아렌트가 노예제나 여성의 폴리스 배제에서 발견한 비극은 사생활의 침해가 아니라 모든 형태의 체계적인 공적 삶의 부정이었다. 상실된 것은 개인의 보호가 아니라, ‘나타남의 공간(space of appearance)’ 그 자체였던 것이다.
현대 자유주의 사상은 이 구도를 완전히 뒤집어 놓았다. 우리가 ‘공적 영역’이라 부르는 것은 아렌트가 ‘사회적 영역(the social realm)’이라 부르는 것이다. 이는 고대적 의미의 공적 영역도 사적 영역도 아닌, 국민 국가와 근대와 함께 출현한 제3의 범주이다.¹³ 사회적 영역은 일종의 집단적인 집안살림(collective housekeeping)의 영역이다. 즉, 경제, 행정, 그리고 인구를 마치 '관리 대상이 많은 거대한 집안을 돌보듯 관리'하는 영역을 말한다. 자유주의가 말하는 공적 자유란 실상 아렌트가 사회적 영역으로 분류했을 것들 - 경제 활동에 대한 간섭으로부터의 자유, 이동의 자유, 소유의 안전 - 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들은 분명 실재하는 가치들이지만, 진정으로 공적이지도 사적이지도 않은 영역에 속한다. 자유주의 전통은 공적 영역을 수호했다기보다 그것을 대체해버렸다.
이러한 범주 오류(category error)는 왜 자유주의 독자들이 아렌트가 말하는 ‘나타남의 공간’을 이해하지 못하는지를 설명해 준다.『인간의 조건』 5장 §28 에서 강조하듯, 이 공간은 “사람들이 말과 행위의 방식으로 함께 있는 곳이라면 어디서든 생겨나며, 모든 공식적인 제도나 정부 형태보다 앞서 존재한다(predates and precedes all formal constitution of the public realm and the various forms of government).”¹⁴ 나타남의 공간은 제도적 장치(성문법)가 만드는 것이 아니다 . 그것은 오직 ‘함께 행위함으로써(acting together)’ 순간적으로 열리는 공간이다.
『과거와 미래 사이』의 서문은 이에 대해 아렌트가 제시한 가장 구체적인 예시를 보여준다. 2차 대전 중 프랑스 레지스탕스 대원들은 “관료 조직 없이, 우방과 적군의 눈을 피해, 국가의 업무와 관련된 모든 중대한 사안들을 행위와 말로 처리하는 공적 영역을 본의 아니게 만들게 되었다(come to constitute willy-nilly a public realm where—without the paraphernalia of officialdom and hidden from the eyes of friend and foe—all relevant business in the affairs of the country was transacted in deed and word).”¹⁵ 쉽게 말하자면, 그들은 권리를 내세우거나 제도를 세워서가 아니라, 함께 행위함으로써 진정한 공적 공간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해방이 오자 이 공간은 해체되었다. 그들은 “개인적 용무라는 무력한 무의미함(the weightless irrelevance of their personal affairs)” 속으로 다시 내던져졌으며, 아렌트가 르네 샤르(René Char)의 구절을 빌려 표현한 ‘슬픈 불투명함(l'épaisseur triste)’—즉 사적 삶의 불투명한 장막 뒤로 격리되었다.¹⁶
이것이 아렌트의 어휘에서 ‘사적(private)’이 의미하는 바다. 보호나 자유가 아니라 무력함(weightlessness, 공적 영역에서 타인에게 인정받을 때의 무게감과 반대되는 의미), 무관함(irrelevance, 세상과 연결되지 못하고 오로지 자기 자신의 이해관계에만 매몰된 상태), 불투명함(opaqueness, 공적 영역의 투명함과 대비되는 사적 영역의 특징)이다. 이 모든 것은 박탈(privation)에 가깝다.
공적 영역이 제공하는 정치적 평등에 대한 오해도 심각하다. 자유주의 이론은 평등의 근거를 정치 이전의 자연 상태에 둔다. 즉, 정치적 결사 이전에 모두가 소유한 평등한 권리다. 아렌트는 이를 뒤집는다. “공적 영역에 수반되는 평등은 필연적으로, 특정 측면에서 그리고 구체적인 목적을 위해 ‘평등해질’ 필요가 있는 불평등한 자들의 평등이다(the equality attending the public realm is necessarily an equality of unequals who stand in need of being 'equalized' in certain respects and for specific purposes).”¹⁷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가 아니라 시민권 덕분에” 평등을 부여받는다.¹⁸ 공적 영역이 없다면 평등도 없다. 오직 힘, 지능, 행운이라는 자연적 불평등만이 존재할 뿐이다. 우리가 불평등하게 태어났기 때문에, 인위적인 공적 영역 안에서만 서로를 평등하게 대우하기로 약속한 것이다. 그러니, 공적 공간에서 평등은 보호받는 것이 아니라 구성(constitute)된다.
이러한 아렌트의 논리는 자유주의의 공/사 프레임워크와 일치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억지로 끼워 맞추는 것은 아렌트적 구분의 현상학적 토대를 무너뜨리고, 철학자가 그토록 경계했던 정치의 사회화 혹은 행정적 관리로 그의 사상을 변질시키는 행위다.
III. 아렌트는 공화주의자도, 공동체주의자도, 진보주의자도 아니다
아렌트를 시민 공화주의자나 공동체주의자로 읽는 것은 꽤 그럴듯해 보인다. 평생 정치 참여를 가치 있게 여겼고, 정치가 경제적 논리로 환원되는 것을 비판했으며, 진정한 공적 공간의 상실을 애석해했기 때문이다. 아렌트의 어휘는 필립 페티트(Philip Pettit), 마이클 샌델(Michael Sandel), 알래스데어 매킨타이어(Alasdair MacIntyre)와 충분히 겹치기에, 그들의 사상 체계 안으로 아렌트를 끌어들이고 싶은 유혹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이러한 동화(assimilation) 시도는 잘못된 것이며, 그 반박 근거는 『인간의 조건』 2장에 명시적으로 서술되어 있다. 사실 문장 자체가 워낙 확해서 도대체 어떻게 이런 오독이 그토록 끈질기게 살아남았는지 의아할 정도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정치는 단순히 사회를 보호하기 위한 수단이 될 수 없다. 그것이 중세의 신도들의 사회든, 로크의 재산 소유자들의 사회든, 홉스의 끊임없는 소유욕에 매몰된 사회든, 마르크스의 생산자들의 사회든, 우리 시대의 직장인들의 사회든, 혹은 사회주의나 공산주의 국가들의 노동자들의 사회든 말이다(Under no circumstances could politics be only a means to protect society—a society of the faithful, as in the Middle Ages, or a society of property-owners, as in Locke, or a society relentlessly engaged in a process of acquisition, as in Hobbes, or a society of producers, as in Marx, or a society of jobholders, as in our own society, or a society of laborers, as in socialist and communist countries).¹⁹
출처 입력
이 문장은 결정적이다. 아렌트는 단 한 번의 움직임으로 정치철학의 모든 주요 전통을 기각한다 - 모두가 정치를 '다른 무언가를 위한 수단'으로 취급한다는 것이다. 로크에게 정치는 재산을 보호하는 수단이다. 홉스에게 정치는 생존을 확보하는 수단이다. 마르크스에게 정치는 사회화된 생산을 가능케 하는 수단이다. 샌델 같은 공동체주의자들에게 정치는 구성된 자아(constituted self)를 표현하고 유지하는 수단이다. 이 모든 경우에서 정치는 도구적이다 - 곧 근본적인 무언가를 위해 복무하는 장치에 불과하다.
아렌트의 입장은 정반대다. 정치는 수단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 자유의 실현(actualization)이다. 자유는 개인이 소유하고 있다가 정치 영역에서 행사하는 어떤 권리 같은 것이 아니다. 자유는 오직 평등한 자들 사이에 나타나, '나타남의 공간'에서 말하고 행위하는 그 '활동' 속에만 실재한다. 아렌트가 “자유롭다는 것과 행위한다는 것은 동일하다(To be free and to act are the same)”고 『과거와 미래 사이』 4장에서 선언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²⁰ 자유는 정치적 행위와 독립적으로 존재하지도, 그것에 선행하지도 않는다. 자유가 곧 정치적 행위다.
이것이 긍정적으로 의미하는 바—그리고 아렌트의 반(反)도구주의에 대한 설명에서 자주 누락되는 지점—는 『혁명에 대하여(On Revolution)』 3장에 제시되어 있다. 미국 건국 시조들의 경험과 그들이 마을 집회나 회의에 참여했던 것을 묘사하며, 아렌트는 다음과 같이 쓴다. “미국인들은 공적 자유란 공적인 업무에 지분을 갖는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활동이 결코 짐이 아니라, 공적으로 그 일을 수행하는 이들에게 그 어디에서도 얻을 수 없는 행복감을 준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the Americans knew that public freedom consisted in having a share in public business, and that the activities connected with this business by no means constituted a burden but gave those who discharged them in public a feeling of happiness they could acquire nowhere else).”²¹ 여기서 등장하는 ‘공적 행복(public happiness)’은 정치 제도가 만들어낸 결과물이 아니다. 그것은 정치 참여라는 행위 그 자체에서 오는 직접적인 경험이다. 그것은 훌륭한 통치에 의해 생산될 수 없고, 비지배(non-domination)에 의해 확보될 수 없으며, 권리에 의해 보장될 수도 없다. 오직 공적인 업무를 공유하는 행위 속에만 존재한다.
이 지점이 필립 페티트 같은 시민 공화주의자들이 아렌트를 왜곡하지 않고서는 수용할 수 없는 대목이다. 페티트는 자유를 ‘비지배’ - 임의적인 간섭이 없는 상태 - 로 정의한다. 이는 어떤 행위 이전부터 법적,제도적으로 보장받는 구조적 속성이다. 하지만 아렌트에게 이것은 자유를 위한 조건일 뿐, 자유 그 자체는 아니다. 공화주의 전통 역시 자유주의와 똑같은 실수를 범하고 있다. 자유를 ‘행위’가 아니라 ‘정치 이전의 속성’에서 찾으려 하기 때문이다.
공동체주의적 접근 역시 결만 약간 다를 뿐 똑같이 잘못된 방향을 짚고 있다. 샌델과 매킨타이어는 자유주의적 자아란 환상일 뿐이며, 오직 공동체, 전통, 관습에 의해 구성된다고 주장한다. 아렌트는 자아에 대한 이러한 형이상학적 주장에는 관심이 없다. 나타남의 공간은 우리가 이미 누구인지를 확인하는 곳이 아니다. 그곳은 우리가 처음으로 자신이 누구인지를 세상에 드러내는 곳이며, 종종 그 과정에서 자기 자신조차 몰랐던 모습에 놀라게 되는 장소다.²² 아렌트에게 정치적 정체성은 정치적 행위에 선행하지 않는다. 그것은 행위로부터 출현(emerge)한다.
아렌트의 저서에서 구체적인 제도적 처방을 찾을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것은 의도된 누락이 아니라, 행위에 대한 철학자의 원칙이 낳은 필연적인 결과다. 행위는 “언제나 관계를 설정하며, 따라서 모든 한계를 밀어내고 모든 경계를 가로지르는 내재적인 경향을 갖는다(always establishes relationships and therefore has an inherent tendency to force open all limitations and cut across all boundaries).”²³ 특정한 정치적 결과를 겨냥해 제도를 설계하는 것은 행위를 ‘제작(fabrication)’과 혼동하는 것이다. 이는 죽어있는 재료를 정해진 목적에 맞추어 빚어내는 장인의 논리다. 정치가 이러한 제작의 모델을 따르는 순간, 그것은 폭정(tyranny)이 된다.
평의회 체제(council system)에 대한 아렌트의 찬탄은 이 논리를 정확히 반영한다. 프랑스 혁명 중에 자생적으로 발생한 평의회들, 러시아의 소비에트, 1956년 헝가리 혁명의 사례들은, 그것이 어떤 우월한 제도적 모델이라서 훌륭한 것이 아니다. 그것들이 현대사에서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정부”가 출현한, 즉 “혁명의 과정 자체에서 구성되고 조직된 자유를 위한 새로운 공적 공간(a new public space for freedom which was constituted and organized during the course of the revolution itself)”이 나타난 유일한 사례들이었기 때문에 귀한 것이다.²⁴ 그것들은 아렌트적 의미에서 순수한 정치적 행위였다. 정당 체제가 이들을 파괴한 사실은 설계의 미흡함을 증명하는 근거가 아니라, 정치적 자유 그 자체에 내재된(constitutive) 숙명적인 취약성을 입증할 뿐이다.
결국 아렌트를 읽고 어떤 정책적 의제를 도출해 내려 한다면, 우리는 아렌트 철학의 정수를 이미 놓친 셈이다.
IV. 『전체주의의 기원』은 냉전기의 양비론적 주장이 아니다
1951년 『전체주의의 기원』이 출간되었을 때, 이 책은 즉각 냉전 논리를 대변하는 텍스트로 읽혔다. 나치 독일과 스탈린주의 러시아는 도덕적으로 동등하며, 따라서 서구 자유주의의 진영이 이 두 체제에 반하는 것은 정당하다는 논거로 쓰인 것이다. 좌파 비평가들은 이것이 파시즘과 공산주의를 하나로 뭉뚱그리는 것이라며 반발했고, 우파 비평가들은 같은 이유로 열광적으로 수용했다. 하지만 두 진영 모두 아렌트가 정작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번지수를 잘못 싶었다.
이 책은 두 체제를 나란히 비교하는 역사서가 아니다. 홀로코스트와 굴라그(Gulag)가 똑같이 악하다거나, 나치 독일과 소비에트 러시아가 동일한 정치적 성격을 가졌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이 책의 논지는 철저히 구조적이고 현상학적이다. 즉, 두 정권 모두 인류 역사에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형태의 지배를 구체화했으며, 그 새로움은 도덕적 동등성이나 역사적 인과 관계에 대한 질문과는 별개로 분석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논증이 가장 정교하게 갈무리된 대목은 1958년 개정판에 추가된 13장, 「이데올로기와 테러」이다. 아렌트는 구조적 근거를 바탕으로 전체주의를 이전의 모든 지배 형태와 구분한다. 전통적인 참주는 공포를 동력 삼아 통치한다. 정치적 삶은 억압하되 사적 영역은 대체로 온전하게 남겨두는 식이다. 그래서 참주에게 처벌받으려면 최소한 참주의 적이어야 했다. 전체주의는 여기서 더 나아간다. 그리고 그 차이는 정도의 차이가 아니라 종류의 차이다.
그 구조적 변화를 상징하는 지표가 바로 ‘혐의자(suspect)’에서 ‘객관적 적(objective enemy)’으로의 전환이다. 참주 정권하에서 비밀경찰은 숨겨진 적들, 즉 위험한 생각이나 행동으로 위협이 되는 개인들을 찾아낸다. 여기에는 도발, 감시, 그리고 실제 혹은 의심되는 반대자들을 식별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러나 전체주의에서 적의 범주는 개인의 행동이나 의도와는 상관없이, 이데올로기적 선언에 의해 결정될 뿐이다. “후자(객관적 적)는 정부의 정책에 의해 정의되는 것이지, 정부를 전복시키려는 개인의 욕구에 의해 정의되는 것이 아니다(the latter is defined by the policy of the government and not by his own desire to overthrow it).”²⁵
나치즘 치하의 유대인이나 스탈린주의 치하의 전직 쿨락(부농)은 의심스러운 짓을 해서 잡혀간 것이 아니다. 그들은 어떤 행위를 저지르기도 전에 이데올로기의 논리에 따라 이미 ‘객관적 적’으로 낙인찍혔다. 이 논리는 더 나아가 ‘가능한 범죄(possible crime)’라는 개념으로 확장된다. 실제로 한 일이나 의도한 일이 아니라, 역사나 자연의 법칙상 '그가 저질렀을지도 모를 일' 때문에 처벌받는 것이다.²⁶ ‘의심스러운 자’에서 ‘객관적 적’을 거쳐 ‘가능한 범죄’로 이어지는 것, 이것은 독일이나 러시아 문화에 대한 역사적 일반화가 아니라 구조적인 전개 과정이다.
전체주의가 왜 전대미문의 지배 형태인지를 이해하는 또다른 열쇠는 ‘고립(isolation)’과 ‘외로움(loneliness)’에 대한 구분이다. 고립은 공적 영역—타인과 함께 행위하는 공간—을 파괴하지만 사적 영역은 남겨둔다. 그래서 고립된 사람도 여전히 일하고, 제작하며, 내면의 삶을 유지할 수 있다. 반면 외로움은 더 근원적이다. 그것은 “세계에 전혀 속해 있지 않다는 경험(the experience of not belonging to the world at all)”²⁷이며, 자아가 타인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과도, 즉 스스로의 경험 및 사유 능력과도 단절된 상태다. 전체주의가 거둔 독보적인 성취는 단순한 고립을 넘어 이 근원적인 외로움을 만들어냈다는 데 있다. 내면적 저항이 싹틀 만한 자아 그 자체를 파괴해버린 것이다.
이 비극을 완성하는 장치가 ‘이데올로기’와 결합한 ‘테러’다. 테러는 “고립된 인간 군상을 하나로 압착하여(presses masses of isolated men together)” 사람들 사이의 빈틈을 지워버린 운동 속으로 몰아넣는다. 여기에 단 하나의 전제로부터 철의 논리로 진행되는 이데올로기적 사고가 더해지면 “실재와의 모든 관계를 파괴한다(ruins all relationships with reality).”²⁸ 이 둘이 결합하여 아렌트가 전체주의 통치의 이상적인 피지배자로 지목한 존재를 만들어낸다. 그는 확신에 찬 나치주의자나 공산주의자가 아니라, “사실과 허구의 구분, 그리고 참과 거짓의 구분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the distinction between fact and fiction and the distinction between true and false no longer exist)” 사람이다.²⁹ 그런 사람은 단지 정치적으로 억압된 것이 아니다. 그들은 정치적 판단에 필수적인 ‘현실 검증 능력’ 자체를 상실하게 된다.
이러한 구조적 분석은 나치 독일과 스탈린주의 러시아 모두에게 들어맞는다. 두 체제 모두 이 새로운 형태의 지배를 완성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비교는 구조적인 것이지 역사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해둘 필요가 있다. 아렌트는 『전체주의의 기원』을 역사서라기보다는 정치적인 책이라고 규정하며, 역사적 책임이나 인과 관계를 따지기보다 새로운 정치적 형태를 만들어내는 ‘결정(crystallization, 여러 요소가 결합하여 하나의 형태를 갖춤)’의 과정에 주목했다.³⁰
따라서 아렌트에게 ‘도덕적 양비론’의 굴레를 씌우는 것은 구조적 분석을 역사적 서술로 오해한 데서 비롯된 실책이다. 두 정권이 새로운 지배 형태를 공유했다고 해서 그 죄의 무게나 역사적 책임, 혹은 외교적 가치가 같다는 뜻은 아니다. 그것은 아렌트가 던진 질문과는 완전히 다른 층위의 문제들이다. 그녀의 구조적 분석을 냉전기식 양비론으로 격하시킨 비평가들은, 정교한 현상학적 탐구 위에 자신들의 정치적 프레임을 덧씌우고 있었을 뿐이다.
V. 공통의 뿌리
앞서 살펴본 네 가지 오독은 하나의 공통된 구조를 공유하고 있다. 독자들이 도덕 심리학, 자유주의 이론, 시민 공화주의, 혹은 냉전기 지정학이라는 미리 짜인 프레임워크를 들고 아렌트에게 접근했다는 점이다. 그들은 아렌트의 텍스트를 자신들의 논쟁 속으로 끌어들여, 아렌트가 실제로는 해체하려고 했던 바로 그 논쟁들의 기여자 정도로 전락시키고 말았다.
물론 이러한 오류는 어느 정도 참작할 만한 면이 있다. 아렌트가 사용하는 어휘들이 표면적으로는 기존 전통들과 상당 부분 겹치기 때문이다. 아렌트는 사유, 자유, 공적 삶, 전체주의라는 용어를 쓰는데, 이 단어들은 도덕 심리학이나 정치학에서 흔히 다뤄지는 것들이다. 하지만 아렌트가 이 용어들로 가리키는 바는 구조적으로 전혀 다르다. 그 차이는 단순히 정의(definition)의 문제가 아니라, 사유가 작동하는 철학적 층위(philosophical register) 자체가 다르다는 데서 기인한다.
아렌트는 기존의 모든 정치적 논쟁보다 훨씬 앞선 지점에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아렌트는 묻는다. 정치적 경험 그 자체의 구조는 무엇인가? 노동·작업·행위의 구분, 필연성과 자유의 구분, 고립과 외로움의 구분, 그리고 사유와 인식의 구분—이런 근본적인 구별들 없이 우리가 정치철학이 대답하려 하는 질문들을 제대로 형성이나 할 수 있겠는가? 이것은 전형적인 현상학적 질문이다. 따라서 그 통찰들을 규범적이나 실증적인 논쟁의 도구로 끌어들이는 순간, 아렌트의 사유가 작동하던 본래의 층위를 파괴하고 만다. IEP(인터넷 철학 백과사전)가 이 방법론을 ‘현상학적 재구성(phenomenological reconstruction)’이라 명명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³¹ 아렌트는 관습적인 의미에서의 정치 이론을 전개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물려받은 낡은 개념들에 가려진 ‘근원적 경험’들을 복원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을 이해하면 왜 아렌트의 저서들이 하나같이 ‘해결책’을 내놓지 않는지 알 수 있다. 『인간의 조건』에는 구체적 처방이 없고, 『혁명론』은 평의회 체제에 대한 명상으로 끝을 맺을 뿐 아무런 권고도 하지 않는다. 『전체주의의 기원』은 구조적 결론만 내릴 뿐 대응책을 제시하지 않으며,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은 도덕적 실패를 처절하게 해부하면서도 예방법을 일러주지 않는다. 아렌트는 정치적 경험을 이해하는 것이 곧 정치적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고 믿는 부류의 사상가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 경험을 이해하는 데 실패하는 것 자체가 가장 깊은 문제라고 믿었다.
아렌트는 『과거와 미래 사이』의 서문에서 자신의 방법론적 입장을 명확히 밝힌다. “이어지는 에세이들은 그러한 연습(exercises)이며, 그 유일한 목적은 사유하는 법을 익히는 데 있다. 이 글들은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지, 혹은 어떤 진리를 고수해야 하는지에 대한 처방을 담고 있지 않다. 무엇보다도 끊어진 전통의 실타래를 다시 잇거나, 과거와 미래 사이의 간극을 메우기 위해 어떤 새로운 대용물을 발명하려 하지 않는다(The following essays are such exercises, and their only aim is to gain experience in how to think; they do not contain prescriptions on what to think or which truths to hold. Least of all do they intend to retie the broken thread of tradition or to invent some newfangled surrogates with which to fill the gap between past and future).”³² 이 ‘연습’들을 특정 정치 프로그램—공화주의든, 공동체주의든, 자유주의든—의 도구로 삼으려는 시도는, 연습 자체를 거부한 채 정답만 내놓으라고 떼를 쓰는 것과 다름없다.
VI. 아렌트를 실제로 읽는다는 것의 의미

아렌트를 잘 읽는다는 것은 아렌트가 우리에게 무엇을 해야 할지 말해주지 않을 것임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아렌트는 개인의 정치적 투신을 확인해 주지도, 기존 이론의 정당성을 확증해 주지도, 이미 벌어지고 있는 논쟁에 바로 투입할 수 있는 개념을 손에 쥐여주지도 않을 것이다. 만약 우리가 허용한다면, 아렌트는 우리가 이미 가지고 있던 개념들—자유, 악, 정치, 권위, 판단—을 재조직하여, 그것들이 더 이상 우리가 알던 의미가 아니게끔 만들 것이다.
여기서 살펴본 네 가지 오독은 모두 이러한 재조직에 저항한다. 그 오독이란 아렌트의 개념들을 가져다가 익숙한 틀—밀그램(S. Milgram), 벌린(I. Berlin), 페티트(P. Pettit), 케넌(G.F. Kennan)— 속으로 다시 끼워 맞추는 행위다.(물론 벌린, 페티트, 케넌이 아렌트를 인용한 방식은 훨씬 정교하다. 문제는 이들을 어설프게 알면서 아렌트를 곁가지로 넣는 시도다) 그 결과, 아렌트는 끝없이 인용되지만 정작 제대로 읽히지 않는 사상가가 되고 만다.
우리가 아렌트를 이해했는지를 확인하는 가장 좋은 시험대는, 아렌트를 도구로 사용하기 어렵다고 느끼는지 여부이다. 읽기가 어렵다는 뜻이 아니다—아렌트의 산문은 주의를 기울인 만큼 보답을 준다. 다만 사용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즉, 논지를 추출하고, 그것을 문제에 적용하며, 그 위에 자기 주장을 쌓아 올리기가 까다롭다는 뜻이다. 만약 아렌트가 프로젝트에 즉각 적용 가능하다고 느껴진다면, 우리는 거의 확실하게 아렌트가 해체하려고 시도했던 기존의 틀 속으로 그를 흡수한 것이다.
『인간의 조건』 제2장에서 대부분의 정치학에 관심 있는 독자들이 가장 좌절하면서도, 동시에 가장 시사점을 얻는 구절은 다음과 같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정치는 단지 사회를 보호하기 위한 수단이 될 수 없다(Under no circumstances could politics be only a means to protect society).”³³ 이 문장은 사회가 무엇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하는지에 대해 새로운 대안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질문 자체를 거부한다. 아렌트에게 정치는 보호를 목적으로 하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자유를 본령으로 하는 일이다. 그리고 아렌트가 이해하는 자유는 결코 보호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자유는 우리가 행동을 멈추는 순간 사라져버린다. 오직 평등한 동료들과 함께하는 취약하고 대체 불가능한 공간 속에서 수행된다.
그 공간이 바로 아렌트가 ‘잃어버린 보물’이라 부른 것이다. 그 보물은 이름이 없다.『과거와 미래 사이』 서문에서 아렌트는 이 보물을 명명하려 시도했던 모든 전통이, 명명하는 행위 자체를 통해 그것을 다른 무언가, 즉 권리, 미덕, 비지배의 조건, 혹은 제도적 배열로 변질시켜버렸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³⁴ 아렌트의 프로젝트 전체는 그 변질 과정에서 상실된 것을 회복(recover)하려는 시도이다. 그것을 과거의 모습 그대로 복구(restore)하려는 것이 아니라(이는 불가능하므로), 그것이 무엇이었는지를 충분히 명확하게 기억하여, 훗날 그것이 다시 나타났을 때 우리가 알아볼 수 있게 하려는 시도다.
이 프로젝트는 고되다. 아렌트 스스로 거부한 프레임워크라는 안정적인 지지대 없이, 아렌트 자신의 용어와 어조로 아렌트를 읽을 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독자는 이 과정이 너무 가혹하다고 느끼고 대신 가장 가까이에 있는 손쉬운 해석의 틀을 붙잡는다. 그 결과 우리 곁에는 인용되지만 읽히지 않는 아렌트만이 남는다. 정밀하고, 기묘하며, 환원 불가능할 정도로 정치적이지만, 정작 자신의 이름으로 진행되는 논쟁에서는 거의 완전히 부재하는 그런 아렌트 말이다.
Notes
- Hannah Arendt, "Thinking and Moral Considerations: A Lecture," Social Research 38:3 (Autumn 1971) [hereafter TMC], opening section.
- TMC, section I. The quaestio facti / quaestio juris framing draws on Kant, Akademie Ausgabe, Vol. XVIII, No. 5636, cited directly by Arendt.
- TMC, section I (concluding three propositions).
- Ibid. Arendt cites Kant's posthumously published notes, Akademie Ausgabe, Vol. XVIII, Nos. 5019 and 5036.
- TMC, section II.
- Hannah Arendt, Lectures on Kant's Political Philosophy, ed. Ronald Beiner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92) [hereafter LK], Part One, Sessions 7–8.
- Ibid.
- Ronald Beiner, "Interpretive Essay," in LK, §3 "Judging Eichmann." Arendt's reply to Scholem is in the Postscript to the second (1965) edition of Eichmann in Jerusalem.
- TMC, section III (concluding passage).
- Ibid.
- Hannah Arendt, The Human Condition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58) [hereafter HC], ch. V, §24.
- HC, ch. II ("The Public and the Private Realm").
- Ibid.
- HC, ch. V, §28.
- Hannah Arendt, Between Past and Future (Viking Press, 1961) [hereafter BPF], Preface: "The Gap Between Past and Future."
- Ibid.
- HC, ch. V, §30.
- HC, ch. II.
- HC, ch. II.
- BPF, ch. IV ("What Is Freedom?").
- OR, ch. III ("The Pursuit of Happiness").
- HC, ch. V, §24.
- HC, ch. V, §25.
- OR, ch. VI ("The Revolutionary Tradition and Its Lost Treasure").
- Hannah Arendt, The Origins of Totalitarianism, new edition (Harcourt Brace Jovanovich, 1973) [hereafter OT], ch. XII ("Totalitarianism in Power").
- Ibid.
- OT, ch. XIII ("Ideology and Terror: A Novel Form of Government").
- Ibid.
- Ibid.
- Hannah Arendt Papers, Library of Congress: "Totalitarianism, the Inversion of Politics" (1958 reflection).
- "Hannah Arendt," Internet Encyclopedia of Philosophy, https://iep.utm.edu/hannah-arendt/.
- BPF, Preface.
- HC, ch. II.
- BPF, Pref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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