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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ciety

굿바이 스타머, 노동당의 앞날은 여전히 험난하다

by pragma 2026. 6. 22.

스타머가 사임했다. 집권 2년도 채 안 된 시점이다. 언론은 그의 실책을 열거하고, 당내 반란을 추적하고, 후임자 경쟁을 예측하느라 바쁘다. 하지만 이 모든 서술은 하나의 전제를 깔고 있다. 노동당의 위기가 사람의 문제라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이 글은 다른 각도에서 접근한다. 스타머 개인의 판단이나 실책보다 훨씬 깊은 곳에서 작동하고 있는 네 가지 구조적 조건을 살펴본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조건들이 바뀌지 않는 한 누가 당수가 돼도 비슷한 벽에 부딪힐 가능성이 높다.


배경

보수당 14년의 유산 — 노동당이 물려받은 것

2024년 총선에서 노동당이 압승한 건 사실이다. 그런데 그 압승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에식스 대학의 Thomas Quinn이 Parliamentary Affairs에서 분석했듯 [2], 노동당 득표율은 33.7%였다. 의석수가 아니라 표의 숫자만 보면 '압승'이라는 단어가 어울리지 않는다. 의석의 63%를 가져간 건 노동당에 대한 지지가 높아서가 아니라, 보수당 표가 사방으로 흩어졌기 때문이다.

 

보수당 붕괴의 직접적인 원인은 이민 공약의 반복적인 실패였다. 2010년부터 2024년까지 네 차례의 총선에서 보수당은 순이민을 '수만 명 수준'으로 낮추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2022년 순이민은 87만 2천 명, 2023년 상반기에는 90만 6천 명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브렉시트 이후 EU 이민은 줄었지만, 비EU 이민이 그 빈자리를 훨씬 크게 채웠다. 2022년부터 영국 해협을 건너는 불법 입국자 수도 급증해 4만 5천 명을 넘어섰다. '보트를 막겠다'던 르완다 추방 계획은 대법원에서 위헌 판결을 받았다.

 

여기에 보리스 존슨의 '파티게이트' 스캔들, 리즈 트러스의 45일 재임과 미니예산 파국, 계속된 공공 서비스 악화가 겹쳤다. 2019년 보수당 지지자 중 2024년에도 그 표를 유지한 비율은 45%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개혁당(20%), 기권(15%), 노동당·자민당(19%)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노동당의 집권은 따라서 자력으로 쌓아 올린 신뢰의 산물이라기보다, 14년간의 보수당 통치에 대한 총체적 거부감의 부산물이었다. 이 사실 자체가 스타머 정부의 근본적인 취약성이었다. 지지자들은 노동당을 원해서가 아니라 보수당이 싫어서 투표한 경우가 많았고, 그만큼 실망이 빨리 찾아왔다.


첫 번째 구조

계급 탈정렬 — 노동당 지지 기반의 오랜 균열

노동당은 원래 노동계급의 당이었다. 정확히는, 그랬던 적이 있었다. 사우샘프턴 대학의 Jennings 외 연구진이 Political Quarterly에 발표한 분석에 따르면 [1], 노동계급 직종 종사자 비율과 노동당 득표율의 상관관계는 1979년 이후 꾸준히 약해져 왔다. 가장 큰 변화는 블레어가 1997년 압승을 거두면서 나타났다. 연합이 넓어지는 대신 계급적 뿌리가 얕아진 것이다. 이후 수십 년 동안 이 추세는 되돌려지지 않았다.

 

계급 대신 교육 수준이 새로운 정치 균열로 자리 잡았다. 1979년에는 대졸 유권자 비율이 높을수록 노동당 득표율이 낮았다. 지금은 반대다. 문제는 이 새로운 연합이 훨씬 불안정하다는 점이다. 2024년 선거에서 노동당의 소수 민족 밀집 지역 득표율 상관계수는 0.59에서 0.34로 급락했다. 대도시 기반 연합 안에서 균열이 이미 벌어지고 있었다는 신호다.

파편화의 수치 — Jennings et al. (2025) 유효정당 수(ENP) 전국: 2017년 2.7 → 2019년 3.1 → 2024년 4.5
선거구 평균 ENP: 2019년 2.5 → 2024년 3.5
노동·보수 합산 득표율 57.4% — 1918년 이후 최저
과반 5% 미만 초박빙 선거구: 2019년 63개 → 2024년 112개

이런 상황에서 2024년 총선 결과를 어떻게 읽어야 할까. Quinn의 분석은 냉정하다. 정당 지지가 강고했던 시기인 1945년부터 1970년대 중반까지, 노동당과 보수당의 의석 격차가 20%p를 넘은 선거는 딱 한 번이었다. 그 이후로는 일곱 번이나 됐다. 1983년, 1987년, 1997년, 2001년, 2005년, 2019년, 2024년. 대승은 이제 민심의 결집이 아니라 표의 분산이 만들어내는 착시다. 단순다수제(FPTP) 아래서 표가 사방으로 흩어질수록 소수 득표로 압도적 의석을 가져갈 수 있다.

 

노동당이 174석 과반을 얻은 것과 170석이 초박빙 선거구에 묶여 있다는 것은 동시에 사실이다. 이 두 가지 숫자가 2024년 승리의 본질을 말해준다.


두 번째 구조

런던 중심 경제의 구조적 함정

노동당은 경제 성장을 핵심 공약으로 내걸었다. 그런데 집권 이후 성장 지표는 기대를 밑돌았다. 왜 그랬을까. 능력 부족이나 정책 실패를 탓하기 전에 한 가지 선행 질문이 있다. 영국 경제 자체가 어떤 구조인가.

 

케임브리지 대학의 Ron Martin과 사우샘프턴 대학의 Peter Sunley는 Contemporary Social Science에 발표한 논문에서 [3], 영국의 극심한 지역 불평등이 자연스러운 경제 집적의 결과가 아님을 논증한다. 1979년 대처 정부의 금융 규제 완화와 1986년 이른바 '빅뱅' 이후, 영국은 금융을 성장의 주엔진으로, 런던을 그 허브로 삼는 경제 모델을 채택했다. 이 모델은 40년 넘게 초당적으로 유지됐다. ONS 공식 통계를 보면, 런던의 1인당 GVA 지수는 1971년 전국 평균의 140.2에서 2021년 185.1로 올랐다. 노스이스트 지역의 두 배가 넘는 수준이다.

금융화의 비용 — Martin & Sunley (2023) 원문 수치 런던: 영국 금융서비스 GVA의 51% 집중 — 2위 에든버러의 10배 이상
GVA 성장률 2009~2020: 런던 52.7% / 노스이스트 22.2%
금융 부문 순비용 추산 1995~2015: 약 £4.5조 (국민소득 2년치)
은행 대출 중 민간 비금융 기업 비중: 1950년 60% → 2010년 10%
런던 외 중소기업의 지분 투자 유치 확률: 런던 기업 대비 50% 낮음

이 구조가 정치적으로 의미하는 바는 명확하다. 지역 격차를 줄이면서 동시에 금융 중심 성장 모델을 유지하는 건 본질적으로 모순이다. 뉴레이버 시기도, 보수당의 '레벨링 업' 의제도 이 모순을 넘어서지 못했다고 저자들은 평가한다. 스타머의 성장 전략 역시 같은 구조 안에서 출발했다.


세 번째 구조

정치 자체에 대한 불신 — 집권 전부터 쌓인 벽

지지율이 떨어졌다고 해서 그게 전부 노동당 평가인 건 아니다. 상당 부분은 정치 제도 전반에 대한 불신이 누적된 결과다. 그리고 이 불신은 스타머가 다우닝가에 들어서기 훨씬 전부터 역대 최저 수준을 기록하고 있었다.

 

NatCen이 매년 발표하는 영국 사회 태도 조사(BSA) 제41판 [4]을 보면, 어느 정당이 집권하든 국익보다 당익을 앞세운다고 '거의 항상' 믿는다는 응답이 45%로 2020년 대비 22%p나 뛰었다. 역대 최고 수준이다. 정치인이 궁지에 몰렸을 때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고 '거의 항상' 생각한다는 응답도 58%로 19%p 올랐다. 영국의 통치 시스템을 '상당히' 또는 '매우 많이' 고쳐야 한다는 응답은 79%였다. 브렉시트 교착 상태였던 2019년과 같은 최저 기록이다.

"다음 정부는 경제와 공공 서비스 회복이라는 과제뿐 아니라, 통치 시스템의 신뢰성과 효율성에 대해 어느 때보다 회의적인 국민을 상대해야 한다. 정책 성과만으로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 John Curtice, NatCen BSA 41차, 2024

선거위원회(Electoral Commission)가 2024년 12월 약 6,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공중 태도 조사 [4a]에서도 비슷한 그림이 나왔다. 정치인을 신뢰한다는 응답은 14%에 그쳤다. 선출직 대표들이 자기 같은 사람은 신경 쓰지 않는다고 답한 비율은 54%였고, 신경 쓴다고 답한 건 22%뿐이었다. 새 정부가 들어선 뒤에도 의회 민주주의에 대한 근본적인 소외감은 달라지지 않았다.

 

LSE의 Ros Taylor가 지적하듯 [5], 흥미로운 점은 영국인들의 대인 신뢰 — 낯선 사람을 믿는 정도 — 는 유럽 기준으로 오히려 높다는 것이다. 불신의 표적이 사람이 아니라 제도라는 뜻이다. ONS 데이터 기반 분석에서 영국의 정부 신뢰 수준은 미국보다도 낮게 나온다. 상원, 정당, 언론 모두 신뢰한다는 비율이 10%대다. 이런 불신은 어느 집권당도 임기 안에 되돌리기 어려운 장기적 조건이다.


네 번째 구조

유권자들의 성향 변화

영국 유권자들은 점점 경제적 이해관계보다 가치와 정체성을 기준으로 정치적 판단을 내리고 있다. 이민, 기후변화, 젠더 이슈를 둘러싼 분열이 전통적인 좌우 경제 균열을 가로지르기 시작했다. 실용적 중도 노선은 이 지형에서 안정적인 위치를 갖기 어렵다.

 

Ipsos와 킹스칼리지 런던이 2025년 8월 무작위확률패널(4,027명)로 실시한 조사 [6]에 따르면, 영국이 '문화 전쟁'으로 분열됐다고 보는 비율은 2020년 46%에서 2025년 67%로 늘었다. 이민자와 영국 태생 시민 사이에 긴장이 있다는 응답도 64%에서 86%로 높아졌다. 트랜스젠더 권리가 지나치게 앞서 나갔다는 응답은 17%에서 39%로 두 배 이상 뛰었다.

가치 균열의 측정 — Ipsos / KCL (2025년 11월) "영국 문화가 너무 빠르게 변하고 있다": 2020년 35% → 2025년 50%
"나라가 예전 같았으면 좋겠다": 2020년 28% → 2025년 48%
"자국이 자랑스럽다": 2020년 56% → 2025년 46% (처음으로 과반 아래)
"문화 전쟁이 영국 사회에 심각한 문제": 2020년 44% → 2025년 64%

이 균열이 노동당 지지층에 가장 직접적으로 충격을 준 집단은 남아시아계 무슬림 유권자들이었다. 아스톤 대학의 Parveen Akhtar가 British Politics에 발표한 연구 [7]는 브래드퍼드에서 2015년과 2024년 사이에 걸쳐 진행한 종단 인터뷰를 바탕으로 한다. 코번 시절 노동당에 들어왔다가 2019년 투표했던 이들 중 상당수가 스타머 체제 하에서 멀어졌다. 2023년 10월 가자 전쟁이 직접적 계기가 됐지만, Akhtar는 이를 돌발 사건보다 더 깊은 흐름으로 읽는다. 20세기 후반 노동계급이 노동당에서 이탈했던 것처럼, 이제 무슬림 유권자층에서 비슷한 민족적 탈정렬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Akhtar가 짚는 핵심은 대표성의 역설이다. 2024년 영국 의회는 역사상 가장 다양한 구성을 갖췄다. 소수 민족 출신 의원 비율이 약 14%로 실제 유권자 구성에 근접했다. 그러나 정작 무슬림 유권자들의 노동당 지지는 이 시기에 약해졌다. 얼굴이 보이는 대표성이 실질적 이익 대변과 같지 않을 때, 유권자 충성도는 유지되지 않는다.

 

여기에 LSE의 Grace Lordan이 제기하는 반론도 주목할 만하다 [8]. 2025년 지방선거에서 개혁당이 강세를 보인 지역을 지도에 놓아보면, 이는 문화적 반동이 아니라 오래된 생산성 불평등 지도와 거의 겹친다. Lordan이 생산성 연구소(Productivity Institute) 데이터를 인용해 지적하듯, 런던의 생산성은 전국 평균의 약 170%로 1980년대 후반 이후 격차가 계속 벌어졌다. 개혁당 지지를 정체성 정치의 반란으로만 읽는 시각은 그 배후에 있는 경제적 배제를 놓칠 수 있다.


그래서, 번햄이 답인가

지금까지 살펴본 네 가지 조건을 다시 정리해 보자. 노동당은 보수당에 대한 반감이 만들어낸 선거 구조 덕분에 집권했다. 득표율 33.7%로 역대 최고의 의석 불비례를 기록한 선거였다. 지역 균형을 약속했지만 실제로는 그 균형을 가로막는 경제 구조를 물려받았다. 역대 최저 수준의 제도 불신 속에서 통치했다. 그리고 어떤 실용 노선으로도 봉합하기 어려운 가치 균열로 지지층이 분열돼 있었다.

Jennings 연구팀이 논문 말미에 남긴 말은 지금 읽으면 예언처럼 들린다. "선거인단이 더 변동성 있고, 불만스럽고, 탈정렬되고 파편화된 상황에서, 공공 서비스를 살리거나 모든 국민의 생활 수준을 높일 손쉬운 처방이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이런 질문도 남겼다. "영국이 이 상황을 처음 겪는 건지, 아니면 끝없이 반복되는 정치적 그라운드호그 데이에 갇힌 건지."

스타머의 사임으로 앤디 번햄이 차기 지도자로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그가 내세우는 '맨체스터리즘' — 경제 거버넌스를 지방 도시권으로 분산하자는 구상 — 은 흥미롭다. Martin & Sunley가 진단한 런던 중심 금융화에 대한 실질적 대응이 될 수 있는지 묻는다면, 적어도 방향은 맞다. 하지만 지금까지 살펴본 네 가지 구조 중 그것이 건드릴 수 있는 건 하나뿐이다. 나머지 셋은 지도자 교체와 무관하게 그 자리에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1] Jennings, W., Furlong, J., Stoker, G. & McKay, L. (2025). "Fragmented and Dealigned: The 2024 British General Election and the Rise of Place-Based Politics." Political Quarterly, 96, 13–25. DOI: 10.1111/1467-923X.13483

[2] Quinn, T. (2026). "Party Fragmentation and Problems of Accountability in the British General Election of 2024." Parliamentary Affairs, 79(1), 71–95. DOI: 10.1093/pa/gsaf024

[3] Martin, R. & Sunley, P. (2023). "Capitalism Divided? London, Financialisation and the UK's Spatially Unbalanced Economy." Contemporary Social Science, 18(3–4), 381–405. DOI: 10.1080/21582041.2023.2217655

[4] NatCen Social Research (2024). British Social Attitudes Survey, 41st Report. natcen.ac.uk

[4a] Electoral Commission (2025). Public Attitudes 2025. electoralcommission.org.uk

[5] Taylor, R. (2024). "Rebuild Trust in Institutions to Save Democracy." LSE British Politics and Policy Blog. blogs.lse.ac.uk

[6] Ipsos / Policy Institute, King's College London (2025). UK's Changing Culture Wars: Division, Tension and Common Ground. ipsos.com

[7] Akhtar, P. (2026). "Ethnic Dealignment and the Limits of Representation: South Asian Muslim Voting Behaviour under Keir Starmer." British Politics, 21, article 3. DOI: 10.1057/s41293-026-00297-w

[8] Lordan, G. (2026). "Reform's Rise is a Productivity Warning, Not a Culture War Victory." LSE British Politics and Policy Blog, 15 May 2026. blogs.lse.ac.u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