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aeon.co/essays/more-migration-or-less-migration-the-answer-is-boring
이민 얘기가 나오면 대화가 이상해진다. 찬성하면 순진한 이상주의자 취급을 받고, 반대하면 인종주의자 혐의를 받는다. 그 사이 어딘가에서 실제로 정책을 고민해야 할 사람들은 말문을 닫는다. LSE 경제학자 앨런 매닝은 바로 이 지점을 문제 삼는다. 이민이 좋다 나쁘다의 싸움을 멈추고, 실제로 작동하는 정책을 어떻게 만들 것인지를 따져보자는 것이다. 그의 에세이 "Make Immigration Boring"을 비판적으로 읽는다.
I. 저자가 문제 삼는 것: 도덕 드라마로 굳어버린 이민 논쟁
앨런 매닝이 이 글에서 겨누는 표적은 특정 이민 정책이 아니다. 이민을 둘러싼 논쟁이 작동하는 방식, 그 구조적 문법 자체다.
숫자부터 보자. 지난 35년 사이 고소득 국가에서 이민자 비율은 거의 두 배로 뛰었다. 미국에서는 2024년 기준 인구의 14.8%가 이민자다. 그런데도 갤럽이 60년째 반복해온 조사에서, 미국인 다수는 거의 매해 이민을 줄여야 한다고 답해왔다. 유럽도 비슷하다.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덴마크 모두 마찬가지다. 유권자가 원하는 것과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일 사이에 넓고 깊은 간극이 있다.
이 간극이 정치적 폭발력을 얻으면서, 이민은 여러 나라에서 가장 뜨거운 의제가 됐다. 영국 개혁당의 나이절 패라지는 '기록적인 대규모 이민이 우리나라를 망쳤다'고 단언하고, 반대편에서 잉글랜드·웨일스 녹색당의 잭 폴란스키는 '이민은 영국의 슈퍼파워'라고 맞받아친다. 이렇게 논쟁은 두 진영으로 굳어진다. 이민은 매우 나쁘다는 쪽과, 매우 좋다는 쪽. 양쪽 모두 증거를 취사선택하고, 과장하고, 때로는 아예 만들어내기도 한다. 상대방 논리의 허점에는 날을 세우면서 자기 논리의 허점에는 관대하다.
매닝의 진단은 이렇다. 이민이 좋은가 나쁜가를 묻는 것은 음식이 좋은가 나쁜가를 묻는 것만큼 무의미하다. 실제로 이민의 영향은 비판론자가 우려하는 것보다 심각하지 않고, 지지론자가 약속하는 것보다 이롭지도 않다. 가령 이민이 현지인 임금을 떨어뜨린다는 주장은 미국 국립과학원의 포괄적 검토 결과, 그 영향이 '매우 작다'는 결론이 나왔다. 하지만 이런 복잡한 진실은 양 진영의 진영 논리 속에서 지워진다.
저자가 도전하는 것은 바로 이 담론 구조다. 이민 정책을 도덕적 정체성의 문제로 다루는 방식, 찬반이라는 이분법 자체가 생산적인 논의를 가로막고 있다는 것이다.
II. 핵심 논지: 이민 정책은 불편한 산술이다
그렇다면 매닝이 제안하는 대안은 무엇인가. 이민 정책을 도덕 드라마가 아니라 기술적 거버넌스의 문제로 다루자는 것이다. 감정적 구호 대신 인구통계와 장기적 계산이 필요하다. 그는 이를 세 축으로 풀어낸다.
논거 1 — 제한은 피할 수 없다, 이념의 문제가 아닌 산술의 문제로
이민 정책의 본질은 선발이다. 누군가에게 '예스'를 말하는 순간, 다른 누군가에게 '노'를 말하는 것이다. 저자는 이것이 고용주가 직원을 뽑거나 누군가가 데이트 신청을 받는 것과 구조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세상이 지금처럼 불평등한 한, 고소득 국가로 이주하고 싶은 사람의 수는 그 나라 사람들이 받아들이고 싶은 수를 항상 초과한다. 그러니 어떤 형태든 이민 정책은 존재할 수밖에 없다. 이 현실을 외면하는 개방 이민론도, 무조건적 거부의 반이민론도 정책의 언어가 아니다.
저자는 숫자로 말한다. 새로 들어온 사람들은 살 집이 필요하고, 일할 기계가 필요하고, 다닐 도로가 필요하다. 2023년 영국은 이민으로 인구가 1.3% 늘었다. 200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라는 추정도 나온다. 신규 이주민에게 기존 주민과 같은 수준의 자본을 제공하려면 GDP의 6%에 달하는 투자가 필요했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 숫자 앞에서 이민은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산술의 문제가 된다.
인구 고령화 문제를 이민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통념도 저자는 꼬집는다. 2019년 유럽위원회 보고서는 출산율 상승도, 이민 증가도 고령화를 막지 못한다고 결론지었다. 이민자도 늙는다. 젊게 들어왔다가 그 사회 안에서 함께 나이 들어간다.
논거 2 — 누가 이민 논쟁을 설계하는가: 확장 편향(expansionary bias)[1]
매닝은 영국 이민자문위원회(MAC) 위원장으로 일하면서 직접 목격한 광경을 털어놓는다. MAC이 공개 의견 수렴을 할 때마다, 기업 로비 집단의 응답 99%는 더 자유로운 이민 정책을 요구하는 내용이었다. 그들은 한결같이 자신들의 요구가 회사 이익이 아니라 국익을 위한 것이라고 포장했다.
기업이 세금 인하, 최저임금 완화, 규제 축소를 요구할 때 진보 진영은 보통 강하게 반발한다. 그런데 기업이 노동 이민 규제 완화를 요구할 때는 진보 진영이 오히려 동조하는 경우가 많다. 이민 정책에 비판적인 태도가 곧 이민자에 대한 적대로 읽힐까봐 눈을 감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논쟁의 의제는 기업의 이해관계 쪽으로 쏠린다. 정치학자 게리 프리먼이 명명한 확장 편향(expansionary bias)이 이렇게 작동한다.
저자는 이를 고용주 비유로 설명한다. 어떤 고용주가 '일할 사람이 없다, 우리 일자리를 아무도 안 원한다'고 하면 이민자를 데려와달라는 요구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생긴다. 기업에 좋은 것이 나라에도 좋은 것인지, 그 질문이 사라진다.
논거 3 — 아무도 꺼내지 않는 딜레마: 규모 대 권리(numbers vs. rights)[2]
이 글에서 가장 날카로운 지점이다. 루스와 마틴의 분석 틀을 빌려, 매닝은 이민 규모와 이민자 권리 사이에 구조적 긴장이 있다고 주장한다. 더 많은 이민을 받아들일수록, 그들에게 부여할 수 있는 경제적·사회적 혜택은 줄어드는 경향이 있다.
두 모델이 이 긴장을 잘 보여준다. 아랍에미리트를 비롯한 걸프 국가들은 인구의 75% 이상이 이민자다. 그러나 이민자들에게는 영주권도, 시민권도, 넓은 의미의 사회적 권리도 거의 없다. 현지인들이 높은 이민을 용인하는 것은, 이민자들에게 주어진 제한적 조건이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반면 유럽 사민주의 모델에서는 이민자들에게 영주권과 시민권으로 이어지는 경로가 열려 있고, 복지 혜택도 단계적으로 보장된다. 대신 어떤 이민자를 받을지 훨씬 까다롭게 고른다. 더 많은 권리를 보장할수록, 더 엄격하게 선별해야 한다는 논리다.
찬성 진영은 높은 규모와 높은 권리를 동시에 원한다. 반대 진영은 규모만 줄이려 하고 권리엔 관심이 없다. 매닝이 보기에 두 입장 모두 이 트레이드오프를 외면한다는 점에서 똑같이 불성실하다.
불법 월경이나 영국 해협을 건너는 소형 보트처럼 관리되지 않는 이민 흐름도 이 맥락에서 다뤄진다. '구금하고 추방하라'는 구호도, '안전하고 합법적인 경로를 열어라'는 구호도 실제 구현은 훨씬 복잡하다. 역사적으로 이런 흐름을 막는 데 효과적이었던 것은 항상 국가 간 협정이었다. 호주와 인도네시아의 합의, EU와 터키의 2016년 협정이 그 예다. 이민 문제는 단일 국가의 정치 사이클 안에서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III. 비판적 독해: 이 글이 말하지 않는 것
매닝의 논지는 분명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날카로운 주장일수록 그 논리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그리고 무엇이 빠져있는지를 따져봐야 한다. 세 가지 지점에서 물음표가 생긴다.
비판 1 — 확장 편향의 원인을 단순화하다[3]
매닝은 확장 편향을 주로 기업 로비의 문제, 그리고 진보 진영이 이를 견제하지 않는 태도의 문제로 설명한다. 로비에 덜 휘둘리고, 진보가 더 비판적이 되면 편향을 줄일 수 있다는 암시다. 그런데 이 개념의 원저자인 프리먼은 훨씬 불편한 진단을 내린다. (사실 글자수가 한정된 저널 에세이라는 장르의 특성상 세세한 뉘앙스를 고려하기라는 힘들 것이다. 그것을 감안하고 읽어야 한다)
프리먼에 따르면 확장 편향은 나쁜 로비스트 때문이 아니라 자유민주주의 정치체계 자체의 작동 방식에서 비롯된다. 이민의 이익은 고용주, 민족 단체, 이민자 가족처럼 특정 집단에 집중되는 반면, 비용은 사회 전체에 분산된다. 이익이 집중된 쪽은 조직화하기 쉽고, 분산된 비용을 짊어지는 쪽은 목소리를 내기 어렵다. 표를 극대화하려는 정치인은 당연히 조직된 집단의 압력에 반응한다. 이민을 제한하려는 정치적 시도는 언제나 인종주의 혐의를 감수해야 하는 반면, 확장적 정책은 별다른 도전을 받지 않는다. 이 구조적 비대칭이 편향을 만든다.
로비 집단을 억제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얘기다. 문제의 뿌리가 체제 자체에 있다면, 매닝의 처방은 증상 완화에 머무를 수 있다.
비판 2 — 규모 대 권리 트레이드오프의 적용 범위를 과도하게 일반화하다[4]
매닝은 루스와 마틴의 프레임워크를 이민 정책 전반에 적용되는 구조적 제약처럼 제시한다. 그런데 원논문을 보면 이 트레이드오프는 저숙련 이민 노동자에게 특히 해당하는 얘기다. 고숙련 이민자의 경우는 오히려 반대다. 인재 유치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에 규모와 권리가 함께 올라가는 양의 상관관계가 나타난다. 캐나다와 호주가 숙련 이민자에게 도착 즉시 영주권과 포괄적 권리를 부여하는 것이 그 예다. 매닝의 글에서는 이 구분이 흐릿해진다.
더 근본적으로, 루스와 마틴은 이 트레이드오프가 자연법칙이 아니라 정치적 선택의 산물이라고 강조한다. 걸프 국가에서 높은 이민 규모와 낮은 권리가 공존하는 것은 카팔라(kafala) 제도 때문이다. 카팔라는 이주 노동자의 체류 자격과 취업 허가를 특정 고용주에게 법적으로 결박하는 제도로, 노동자가 고용주의 동의 없이는 직장을 바꾸거나 출국할 수조차 없다. 이는 이민을 많이 받으면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결과가 아니라, 그 결과를 만들어낸 특정한 법적 선택이다. 트레이드오프를 불가피한 제약으로 제시하는 순간, 그것을 설계한 권력 관계에 대한 질문은 사라진다.
비판 3 — 중립적 분석이라는 외피 아래 감춰진 전제
세 번째 문제는 가장 근본적이다. 매닝은 도덕 드라마를 걷어내고 냉정한 분석을 하자고 촉구하지만, 그 분석의 출발점 자체가 이미 하나의 정치적 선택이다.
저자는 정책 정당성의 기준을 내내 수용국 유권자의 선호에 두고 있다. '주민들이 원하는 것', '현지인들에게 좋은 것'이 암묵적인 논의의 출발선이다. 이것은 방법론적 민족주의(methodological nationalism), 즉 국가를 분배적 관심의 자연스러운 단위로 당연하게 전제하는 태도다. 저자는 이 전제를 옹호하거나 설명하지 않는다. 그냥 가정한다.
코스모폴리탄 정의론의 관점에서 보면 이건 결코 중립이 아니다. 조셉 카렌스 같은 철학자라면 이렇게 물을 것이다. 출생지라는 도덕적으로 우연한 사실이 왜 누가 어디서 살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 근거가 돼야 하는가? 아무리 냉정한 분석이라도, 누구의 관점에서 냉정한가라는 질문을 피해 갈 수는 없다.
IV. 총평
매닝의 글이 가치 있는 건 이민 논쟁에 답을 내놓아서가 아니다. 찬반 이분법과 로비에 포획된 담론이 어떻게 사회로 하여금 인구 거버넌스의 진짜 불편한 산술을 직면하지 못하게 가로막는지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이민이 좋은가 나쁜가를 따지는 데 소모되는 에너지를, 얼마나 어떤 방식으로 받을 것인가라는 구체적인 질문으로 돌려야 한다는 주장은 지금 감정적 전쟁터가 된 이민 논쟁을 생각하면 충분히 귀 기울일 만하다.
한계도 있다. 에세이라는 형식의 특성상 어쩔 수 없는 면이 있지만, 냉정한 분석을 촉구하는 이 글이 정책 정당성의 기준을 내내 수용국 유권자의 선호에 두고 있다는 점은 눈여겨볼 만하다. 탈이념을 표방하는 프레임워크 안에도 검토되지 않은 전제는 있다. 이 전제를 제대로 따지려면 경제학 바깥으로 나가야 한다. 정치철학, 이민법, 국제관계, 그리고 이민자 당사자의 목소리까지. 이민 문제는 어느 한 분야의 언어로 다 잡히지 않는다. 매닝의 글은 좋은 출발점이지만, 출발점일 뿐이다.
각주
[1]: Gary P. Freeman, "Modes of Immigration Politics in Liberal Democratic States," International Migration Review 29, no. 4 (1995): 881–902. 프리먼은 이민의 이익이 고용주·민족 단체 등 특정 집단에 집중되는 반면 비용은 사회 전반에 분산되기 때문에, 이민 정치는 구조적으로 확장적일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그는 이를 '고객 정치(client politics)'라는 개념으로 설명하면서, 정치인들이 조직화된 친이민 집단의 압력에 반응하고 광범위하지만 조직되지 않은 반대 여론은 무시하는 패턴이 모든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다고 본다 (pp. 881–886).
[2]: Martin Ruhs and Philip Martin, "Numbers vs. Rights: Trade-Offs and Guest Worker Programs," International Migration Review 42, no. 1 (2008): 249–265. 루스와 마틴은 규모 대 권리의 역관계가 특히 고소득 국가의 저숙련 이민 노동자에게 적용됨을 명시하며, 고숙련 이민자의 경우 오히려 규모와 권리 사이에 양의 상관관계가 나타난다고 구분한다 (p. 254). 또한 이 트레이드오프는 어느 쪽에 우선순위를 둘지에 대한 규범적 선택의 문제라고 강조한다 (pp. 260–261).
[3]: Freeman (1995), pp. 884–886. 프리먼은 이민을 제한하는 방향의 정치적 호소가 항상 인종주의 혐의를 받는 규범적 구조를 지적하며, 이로 인해 확장적 정책만이 완전히 정당한 것으로 간주된다고 분석한다. 또한 개별 로비스트의 행위보다 이익 비대칭의 구조 자체가 문제의 근원임을 강조한다 (p. 885).
[4]: Ruhs and Martin (2008), pp. 253–254. 저자들은 고숙련 이민자 시장은 수요 초과(excess demand) 상태이므로 고임금과 폭넓은 권리가 함께 제공된다고 분석하며, 이는 저숙련 이민자 시장에서 나타나는 역관계와 구별된다. 또한 트레이드오프가 정치적으로 다시 쓸 수 있는 성격임을 밝히며, 이를 불가피한 철칙으로 취급하는 것에 대해 경계한다 (pp. 260–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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