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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책이나 읽는다고 독서가 아니다: 쓰레기 같은 책 사이에서 1% 진주를 찾아내는 법

by pragma 2026. 5. 8.

좋은 책을 고르는 방법은 많지만 그만큼 시대에 따라 의견이 갈린다. 하지만 적어도 비문학(Non-fiction)의 영역에서라면 취향이라는 모호한 방패 뒤에 숨을 곳은 없다. 이곳은 철저히 팩트와 논리로 승부하는 전쟁터이기 때문이다. 참고로 비문학은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하는 장르가 아니다. 필요한 부분만 발췌해 읽으면 된다. 삼백 페이지 이상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경우는 두 가지. 연구자거나 서평을 써야 하거나.

 

문학은 논외로 하겠다. 라이트노벨이든, 양판소든, 고전이든 그것은 취향의 영역이다. 장르니 순수니 하는 치졸한 구분으로 세를 나누고 싶지도 않다. <반지의 제왕>이나 <듄>처럼 잘 쓴 장르 문학은 결국 역사가 된다. 오직 비문학에만 집중하여, 지적 사기에 당하지 않는 선구안의 기준을 정리한다.

 

먼저 저자의 약력은 안 보는 게 낫다. 저자의 권위가 개입하면 엉망인 글도 심오한 뜻을 담는 듯한 플라시보 현상이 일어난다. 정 약력이 궁금하면 독자가 직접 찾아보게 만들어야 한다. 여기서 한국과 구미권의 차이가 극명하게 갈린다. 한국은 책날개에 저자 신상을 과할 정도로 상세히 적는 반면, 구미권은 극도로 간결하거나 아예 생략한다. 오직 메시지로만 승부하라는 의도다.

 

책표지에 실린 몇 줄 짜리 서평은 나는 무시한다. 퍼블리셔스 위클리나 뉴욕 타임즈, 더 가디언지라 해도 예외 없다. 입 발린 소리 하는 건 어느 나라나 똑같다.

 

명문대 출신 박사나 빵빵한 이력의 교수라고 안심할 순 없다. 기업이나 종교계에서 뒷돈 받고 쓰는 책이 은근히 많다. 그나마 과학계는 개수작을 철저히 견제하는 시스템이 있지만, 인문학계는 검열이 느슨해, 얼치기 학자들이 물을 더럽혀도 뭐라 하는 사람이 없다. 농부가 봄철에 잡초 새싹을 제거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조금만 날씨가 더워져도 잡초가 농작물보다 더 빨리 자라니까. 아무튼 참 쪽팔린 일이다.

 

논픽션의 정수는 서문에 있다. 현대의 독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독파할 심적, 시간적 여유가 없다. 따라서 단 열 페이지에서 스무 페이지 내에 핵심 주장과 배경을 압축해낼 수 있는 서문의 퀄리티가 곧 책의 수준을 결정한다. 구미권은 서문 문화가 옛날부터 매우 정교하다. 유명한 펭귄이나 옥스퍼드 대학 출판부의 고전 시리즈는 당대 최고의 지성인들이 서문에 심혈을 기울인다. 때로는 본문보다 서문의 퀄리티를 위해 특정 판본을 가려 읽어야 할 정도다. 물론 이 서문 문화는 고전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북미권과 서유럽권 대학 출판부에서 나온 책들은 열에 여덟아홉은 서문에 공들인 티가 난다. 그래야 바쁜 사람들이 읽고 필요한 부분만 발췌하니까.

 

구성적 측면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참고문헌과 주석이다. 논문급의 엄격한 인용 스타일을 지켰는지 확인해야 한다. 아무리 형식이 덜 엄격한 에세이라도 인용만큼은 타협해서는 안 된다. 주석이 풍부하다는 것은 그만큼 자료 수집에 공을 들였다는 신호다. 개인적으로는 주석이 페이지 하단에 달린 것을 선호한다. 책 뒤편에 몰아넣은 주석은 독자의 검증 흐름을 방해한다. 친절한 저자는 독자가 바로바로 근거를 확인할 수 있게 배려한다. 이 기준은 다른 것들에 비해 후순위다. 형식 때문에 내용이 좋은 책을 버릴 수는 없지 않은가?

 

문체는 간결하고 볼 일이다. 논픽션도 자유로운 에세이가 있고, 반쯤은 학술적인 텍스트가 있는데, 에세이/수필에 지나치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학술적인 목적-데이터 인용-이 있다면 형용사와 부사의 남용은 미덕이 아니라 악덕이다. 이건 저자의 가치 판단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전문 용어도 가급적 사용을 삼가야 한다. 불가피하면 제대로 풀어 쓰던가. 언어의 사회성을 망각한 저자들을 보면 책으로 후려치고 싶은 심정이다. 특히 대륙철학 물 묻은 사람들이 잘난 체가 심한데, 제발 로벨리나 세이건 같은 과학자들이 쓴 대중서를 읽어보길 바란다. 그런 게 진정한 소통이다.

 

내용이 알찬 책은 주장에 철저한 근거를 단다. 통계청, 전문 연구기관, 논문 등을 활용은 기본 덕목이다. 그러나 진정한 미덕이란 자기 입맛에 맞는 데이터만 골라 쓰는 확증편향을 경계하는가이다. 팩트풀니스나 아웃라이어 같은 책들이 빠지기 쉬운 함정이다. 진짜 좋은 책은 자신의 견해와 상반되는 데이터까지 다루는 용기가 있다. 듣기 싫은 소리를 다루는 데는 논리적 정직함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유발 하라리는 나쁜 책의 전형이다. 근거는 빈약하고 혓바닥만 화려할 뿐. 하라리의 정 반대로만 하면 정말 좋은 인문-사회 텍스트가 나온다.

 

시간이 없을 때 인터넷 서점의 평판을 보는 법도 있으나, 국내 도서평은 믿을 게 못 된다. 비평 문화가 멸종한 탓에 좋은 게 좋은 거지 식의 온정주의만 가득하다. 자아가 비대한 이들이 모인 모 커뮤니티 역시 오염되긴 마찬가지다. 번역서를 고른다면 사기 전에 굿리즈(Goodreads)에서 원본을 찾아보길 권한다. 전 세계 지식인들이 참여하여 표본 수가 압도적이며 통계적 오차가 적다. 현직 교수나 박사급 유저들이 깐깐하게 매긴 점수에서 4.0 이상을 받은 책은 믿고 읽어도 된다. 야구로 치면 타선의 거의 모든 선수가 안타나 홈런을 치는 격이다.

 

이것이 나의 책 고르기 철학이자, 내 서재의 검역 기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