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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망신 시리즈 01] 뇌피셜로 글을 떡칠하면 안 되죠 하라리 씨

by pragma 2026. 4. 29.

 

한국에 들어오는 농수산물은 식약처의 검역을, 공산품은 환경부의 인증을 거쳐야만 비로소 이 땅에 발을 붙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지적 저작물'에 한해서는 검역절차가 그다지 신통치 않다. 수년째 베스트셀러 상단에서 내려올 줄 모르는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가 그 증거다. 중세 전쟁사 전공자 한 명이 고인류학부터 경제, 종교를 넘나들며 인류사 전체를 통달했다고 읊어대는데, 이를 검증해야 할 먹물 깨나 묻었다는 양반들이 유튜브에서 〈이 책을 꼭 읽어야 하는 이유〉 이러면서 칭찬이나 하고 있다. 현대 학문의 분업화가 왜 공장의 공정만큼이나 세밀해졌는지 망각한 모양이다. 책이 두꺼운 데에 비례해서 얼토당토않은 소리도 많은데 그중에 혈압을 올린 포인트 몇 개만 짚고자 한다.
 
주인장은 제미나이나 클로드에게 물어보면 2초 만에 나올 줄거리를 위해 지면을 할애하지 않는다.

 


1. 7만 년 전의 '뇌피셜' 혁명과 포퓰리즘 과학


하라리는 인류사의 변곡점으로 '인지 혁명'을 제시한다. 7만 년 전, 사피엔스의 뇌 속에 무언가 변화가 일어나 허구를 말할 수 있게 되었다는 주장이다. 이 대목에서 하라리가 암묵적으로 기대고 있는 이론적 원천은 고고학자 리처드 클라인(Richard Klein)의 이른바 '대도약(Great Leap Forward)' 가설이다. 현생 인류의 인지 능력이 어느 시점에 갑작스럽게 도약했다는 시나리오인데, 문제는 이 가설이 이미 2000년대 이후 고고학계에서 소수 의견으로 밀려난 지 오래라는 것이다. 
 
고고학적 증거는 가혹하다. 샐리 맥브리어티(Sally McBrearty)와 앨리슨 브룩스(Alison Brooks)는 2000년 발표한 「혁명은 없었다(The Revolution That Wasn't)」에서 아프리카 중기 석기시대 유물들을 체계적으로 검토한 끝에, 현대적 행동 양식이 특정 시점에 폭발한 것이 아니라 아프리카에서 수십만 년에 걸쳐 점진적으로 축적됐음을 논증했다. 학계 표준 논문이 된 지 25년이 지난 연구다. 남아프리카 블롬보스 동굴에서 발견된 기하학적 문양은 하라리가 설정한 인지 혁명 시점보다 수만 년 앞서고, 최근 유전체 연구는 네안데르탈인 역시 장신구를 사용하고 매장 의례를 행했음을 보여준다. 인지적 도약이 사피엔스만의 전유물이라는 전제 자체가 흔들리는 것이다.
 
요컨대 하라리의 인지 혁명론은 이론적 기반도 낡았고, 고고학적으로도 반박됐다. 이미 학계에서 결론이 난 싸움을 '우연한 돌연변이'라는 네 글자로 봉인한 채 대중 앞에 내놓은 것이다. 학자의 태도가 아니라 대중의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삼류 이야기꾼의 태도다.

c.f.
하라리의 사실 오류가 인지 혁명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은 신경과학자 다르샤나 나라야난(Darshana Narayanan)의 글이 잘 보여준다. 그는 하라리가 침팬지가 치타와 싸운다고 쓴 것을 지적하는데, 침팬지와 치타의 서식지는 아프리카에서 겹치지 않는다. 하라리 본인의 옥스퍼드 지도교수 스티븐 건(Steven Gunn)이 뉴요커 인터뷰에서 "질문을 너무 크게 던져서 아무도 틀렸다고 말할 수 없게 만드는 방식으로 전문가 검증을 우회했다"고 인정한 것도 나라야난이 발굴한 내용이다. 제자의 학문을 칭찬한 것이 아니라 검증 회피 전략을 해설해준 셈이다.

2. '상상의 질서'라는 단어가 은폐하는 지적 사기

하라리 비극의 절정은 국가, 화폐, 종교를 '상상의 질서'라 부르며 이를 '허구(Fiction)'와 동치시키는 대목이다. 이는 물질적인 것과 실재하는 것을 구분하지 못하는 초보적인 철학적 오류다.
 
에밀 뒤르켐(Émile Durkheim)은 19세기 말에 이미 사회적 사실(faits sociaux)을 "개인 외부에 존재하며 강제력을 행사하는 실재"로 정의했다.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게 아니라는 것, 사회학 개론 1주차 내용이다. 철학자 존 설(John Searle)은 그 논의를 현대적으로 정교화하여 국가나 화폐 같은 것들을 '제도적 사실(Institutional Facts)'이라 명명했다. 설의 공식은 간결하다. "X는 맥락 C에서 Y로 간주된다(X counts as Y in context C)." 대한민국 원화로 인쇄된 종이 조각이 편의점에서 물건과 교환되는 것은, 그 종이가 특정 맥락 안에서 화폐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그 간주가 곧 실질적 강제력을 발생시킨다. 소프트웨어에 형체가 없다고 컴퓨터를 고철 덩어리라 부르지 않는 것처럼, 물리적 실체의 부재가 곧 허구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뒤르켐에서 설로 이어지는 이 계보는 하라리가 '허구'라는 단어 하나로 뭉갠 것을 사회과학과 분석철학이 이미 150년에 걸쳐 정밀하게 해부해왔음을 보여준다. 하라리가 책을 안전하게 출판하고 '실재하는 인세'를 챙길 수 있는 것도, 그가 허구라 부르는 법적 계약과 금융 시스템이 실질적인 강제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법적 책임은 무서워하면서 그 토대인 제도적 질서만은 유독 '사기'라고 부르고 싶어 하는 태도는, 지독한 모순이다.


3. 농업 혁명: 잉여의 혜택을 누리는 자의 역겨운 탐미주의

그는 농업 혁명을 '역사상 최대의 사기'라고 몰아세운다. 개별 인간의 삶이 수렵채집 시대보다 불행해졌다는 감상적인 이유에서다. 하라리는 도대체 어떤 근거로 '행복'과 '불행'을 계량화했는지 의문이다. 수렵채집인이 행복했다는 주장은, 그들의 주관적 경험에 대한 데이터가 원천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반증 자체가 불가능하다. 반증 불가능한 주장은 과학이 아니라 신화다. 하라리는 행복 연구를 끌어들이면서도 인간이 어떤 조건에서든 기준점에 적응한다는 적응 편향(hedonic adaptation)의 문제는 편리하게 건너뛴다. 그가 찬양하는 수렵채집인의 삶은 높은 영유아 사망률과 짧은 평균 수명이라는 가혹한 자연의 폭력 아래 놓여 있었다.
 
체리피킹은 더 노골적인 곳에서도 드러난다. 하라리는 농업 이후 인간의 골격이 왜소해지고 영양 상태가 나빠졌다는 고고학적 연구를 인용한다. 이건 사실이다. 그런데 같은 시기 연구들이 보여주는 반대 방향의 증거들, 즉 정주 생활이 가져온 면역 다양성의 축적, 영아 생존율의 장기적 개선, 인구 밀도 증가가 촉진한 지식의 누적과 전파에 대해서는 조용히 침묵한다. 고고인구학자 장-피에르 보케-아펠(Jean-Pierre Bocquet-Appel)은 전 세계 신석기 유적의 묘지 데이터를 분석하여 농업 전환기에 여성 1인당 출생률이 약 2명 증가하는 인구전환 신호를 포착했다. 골격이 잠깐 왜소해지는 동안 인구 자체는 폭발적으로 늘었다는 뜻이다. 불편한 반례는 각주에도 없다. 이것이 하라리의 방법론이다.
 
더불어 짚어야 할 것이 있다. 농업과 초기 국가에 비판적인 시선이 학문적으로 불가능한 것이 아님은 제임스 C. 스콧(James C. Scott)의 Against the Grain(2017)이 증명한다. 스콧은 곡물 농업의 확산이 국가의 과세 가능성이라는 권력 메커니즘에 의해 추동됐다고 분석하며, 초기 정주 국가가 전염병과 강제 노동으로 점철된 취약하고 병적인 구조물이었음을 고고학과 역사학의 실증 위에서 논증한다. 하라리 못지않게 날카로운 결론에 도달하면서도 방법론의 품위를 버리지 않는다. 차이는 바로 거기에 있다. 비판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근거 없는 비판이 문제인 것이다.
 
사실 농업은 인류에게 '안정적인 칼로리 공급'과 '지적 잉여'를 제공했다. 농경이 시작된 메소포타미아에서 인류는 최초로 식량 저장 기술을 발명했고, 이는 기근이라는 변수를 미약하나마 통제 가능한 범위 안으로 끌어들였다. 더 나아가 농업이 만든 '잉여'는 분업을 낳았고, 그 분업은 금속 활자와 백신, 그리고 지금의 반도체 문명을 탄생시켰다. 하라리 본인이 사냥 나가는 대신 에어컨 밑에서 궤변을 늘어놓을 수 있는 이유 또한 바로 이 농업이 만들어낸 잉여의 나비효과 덕분이다. 문명이 준 모든 안락함을 누리면서 그 토대를 사기라고 비웃는 태도는, 배부른 자가 읊조리는 가짜 낭만주의에 불과하다.


총론

결국 『사피엔스』가 베스트셀러 상단을 점령하고 있는 현상은 우리 사회의 지적 검역 시스템이 맛이 갔음을 알리는 장례식 종이다. 과학과 수학이 사회적 대접을 받는 이유는 그 결과값이 달콤해서가 아니라, 학자들이 스스로의 저작물에 대해 가혹할 정도의 비평과 자기검열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과학 커뮤니케이터가 말 한마디만 실수해도 동료나 선배들의 호된 질책이 따르는 그 서슬 퍼런 엄밀함이 곧 대중적 신뢰의 기반이다.
 
인문학도 마땅히 그러했어야 했다. 역사학적 방법론과 사회학적 데이터로 하라리의 궤변을 제일 먼저 격파했어야 할 이들이 침묵하는 사이, '이건 과학도, 역사도 아니다'라며 총대를 멘 것은 해외의 신경과학자 나라야난, 유전학자 애덤 러더퍼드(Adam Rutherford), 그리고 고고학자들이었다. 각자의 전문 영역에서 하라리의 주장이 해당 분야의 실증과 충돌한다고 지적한 것이니, 이건 인문학계의 밥그릇 싸움이 아니다. 한국의 인문학은 그마저도 없이, 대중의 구미에 편승해 스스로의 엄밀함을 팔아치웠다.
 
인문학이 대중에게 학문이 아닌, 허세와 공허한 마음을 달래는 힐링의 도구로 소비되는 것은 명백한 자업자득이다. 하라리는 사피엔스가 허구를 믿는 능력이 있다고 말한다. 그의 말이 유일하게 들어맞는 지점은 바로 이 부실한 책이 지성인의 필독서로 둔갑한 현상 그 자체다. 통찰은 쉽고 편안한 요약본 속에 있지 않다. 그것은 고통스러운 검증과 반증의 불길 속에서만 제련되는 법이다.
이런 책에 인문학의 딱지를 붙여 권장하는 지적 태만이야말로, 우리가 가장 먼저 경계해야 할 '역사상 최대의 사기'다.


c.f. 이 책을 인테리어 소품으로 쓰겠다면 적극 권장하고 싶다. 두껍고, 디자인이 깔끔해서 있어 보이는 데는 제격이니까.
c.c.f. 그럼 사피엔스의 대안이 뭐가 있냐고 궁금할 분이 있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한 권의 책으로는 불가능하다. 주인장이 생각하는 최선의 대안은 예일대학교 출판부에서 나온 A Little History 시리즈이다. 일부는 한국어로 번역되어 있다. 그것보다 더 세세한 주제를 폭넓게 알고 싶으면 교유서가 첫단추 시리즈가 무난하다. 옥스퍼드 대학 출판부에서 나온 Very Short Introduction 시리즈를 옮긴 것이므로. 농업과 초기 국가에 관해서라면 제임스 C. 스콧의 Against the Grain(2017)을 권한다. 하라리와 결론의 방향이 비슷한 것처럼 보이면서도, 학문이 어때야 하는지를 한 권으로 보여주는 책이다.


레퍼런스

  • 블롬보스 동굴 기하학적 문양(약 7만 5천~10만 년 전): d'Errico, F. et al. (2005). "Nassarius kraussianus shell beads from Blombos Cave." Journal of Human Evolution, 48(1), 3–24.; Henshilwood, C. et al. (2002). "Emergence of Modern Human Behavior." Science, 295(5558), 1278–1280.
  • 네안데르탈인들의 장신구 사용: Zilhão, J. et al. (2010). "Symbolic use of marine shells and mineral pigments by Iberian Neandertals." PNAS, 107(3), 1023–1028.
  • 인지 혁명 점진론: McBrearty, S. & Brooks, A. S. (2000). "The revolution that wasn't: A new interpretation of the origin of modern human behavior." Journal of Human Evolution, 39(5), 453–563.
  • 제도적 사실(Institutional Facts): Durkheim, É. (1895). Les Règles de la méthode sociologique. 특히 1장 사회적 사실의 정의 참조.; Searle, J. R. (1995). The Construction of Social Reality. Free Press. 특히 1–2장 참조.
  • 신석기 인구전환: Bocquet-Appel, J.-P. (2011). "When the world's population took off: The springboard of the Neolithic Demographic Transition." Science, 333(6042), 560–561.
  • 농업과 국가 권력: Scott, J. C. (2017). Against the Grain: A Deep History of the Earliest States. Yale University Press.
  • Narayanan, Darshana. "The Dangerous Populist Science of Yuval Noah Harari." Current Affairs, 07/06/2022.
  • Hallpike, C. R. "Review of Yuval Harari's Sapiens: A Brief History of Humankind." New English Review, 2017.